최근 한 유통기업의 임원은 주요 경제학회를 찾아 유통산업발전법 입법영향 분석을 의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프라인 쇼핑몰이 초토화된 상황에서 주말 영업까지 못 하게 될 경우 일자리 충격이 얼마나 될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5대 그룹 중 한 곳은 상법 개정안이 시행됐을 때 다중대표소송을 당할 수 있는 계열사의 위험요인 분석에 나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정 3일 만에 법 시행까지 됐다. 기업들은 이번엔 ‘공정경제’ 법안 차례가 아닐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1일 정기국회 개원을 앞두고 재계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4월 총선에서 여당이 대승을 거둔 이후 ‘슈퍼여당’ 체제에서 열리는 첫 정기국회인 만큼 정부여당이 발의한 ‘공정경제’ 관련 법안들이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계는 정부가 입법예고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원안 그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이 ‘예고편’이라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전례 없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로 일부 경제법안 입법이 미뤄질 수 있다는 예측도 있었지만 희망을 접었다”며 “20대 국회에선 야당이 위원장을 맡은 법사위에서 법적 요건을 살펴보는 ‘체계·자구심사’를 거치기라도 했지만 이번 국회에선 이 같은 법사위의 역할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주요 기업과 경제단체는 국회가 ‘마지막 동아줄’이라며 입법 저지 호소에 나선 상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1일 국회 정무위와 법사위에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신중히 검토해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경제 위기 극복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불필요한 규제 대응에 기업 내부 역량을 소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같은 취지의 입장문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하면서 기업마다 비상이 걸린 상태다. 규제 대상 총수 일가의 지분이 기존 30%에서 20%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실제로 ㈜LG, ㈜KG, IMM인베스트먼트, 삼양사 등 51개 그룹의 388개사가 규제 대상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총수 지분이 많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총수 일가가 불합리한 이득을 취했는지를 보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의 기준 자체가 애매해서 시도 때도 없이 고발당하지 않으려면 결국 총수의 지분을 줄이라는 것으로 기업들은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친노조 관련 법안들도 만만치 않다. 고용노동부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현재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상태다. 개정안은 기업 근로자가 아닌 사람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노동계에 편향된 법안’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폭력, 파괴 시에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손해배상 인정범위를 대폭 축소한 여당발 노조법 개정안도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협력이익공유제’를 담고 있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 개정안 등 반(反)대기업 법안도 다수 이번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과 하청기업의 협력에서 발생한 이익을 약정한 바에 따라 나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익은 공유하지만 손실은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합리하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수많은 협력업체가 함께하는 제조업의 특성상 협력사별 중요도를 정확히 산정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있다.
복합쇼핑몰, 백화점, 면세점 등을 영업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시장, 군수, 구청장 등이 대규모 점포와 프랜차이즈 직영점의 영업과 시설을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게 하는 지역상권상생법도 여당 발의로 국회 계류 중이다.
한 유통업체 고위 관계자는 “대형 점포에 입점한 점주들도 대부분 소상공인이다. 대기업과 영세상인 간 갈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 코로나19로 구조조정 위기까지 몰린 것을 보고도 설마 영업 규제에 나설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결국 통과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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