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위해 적은 내 개인정보, 아무나 다 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4일 03시 00분


음식점 명부 관리 부실, 무방비 노출

3일 오후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 입구 바깥에 출입자 명부가 그대로 놓여 있다. 해당 명부에는 방문객들의 개인정보가 
세세하게 적혀 있지만 따로 관리하거나 지키는 이는 없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3일 오후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 입구 바깥에 출입자 명부가 그대로 놓여 있다. 해당 명부에는 방문객들의 개인정보가 세세하게 적혀 있지만 따로 관리하거나 지키는 이는 없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이거 누가 사진이라도 찍어 가면 어떡하려고….”

3일 낮 12시 반경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

점심시간을 맞아 고객들이 드나드는 문 바깥에 덩그러니 출입자 명부가 놓여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역학조사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잠깐 훑어봐도 방문객들이 쓴 실명과 휴대전화번호 등을 누구나 알아낼 수 있었다. 지키는 직원도 없다 보니 잠깐 망설이다 그냥 들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음식점 측은 “수기 명부를 작성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관리 규정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어 잘 몰랐다”고 해명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수도권에서는 카페와 제과점 등을 포함한 모든 음식점이 출입자의 개인정보를 명부에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업소는 손으로 쓰는 수기 명부를 비치만 해둘 뿐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객의 개인정보도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었다.

▼ 실명 - 전화번호 적힌 명부 덩그러니… “사진 찍어가면 어쩌려고” ▼

출입자 명부 관리 부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 5일째인 3일. 동아일보는 서울에 있는 카페와 빵집, 식당 등 관련 업소 30곳에서 출입자 명부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살펴봤다. 모두 문 앞이나 입구의 데스크 등에 명부를 비치해 두긴 했다. 업소 측은 명부 의무화가 갑작스레 내려온 지침인 데다 중장년층 등 QR코드 이용을 꺼리는 고객도 적지 않아 수기 명부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수기 명부의 관리와 보관 규정을 제대로 아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는 점이다. 상당수 영업점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큰 수기 명부를 형식적으로 갖춰 놓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 휴대전화 번호까지 그대로 노출

영등포구에 있는 한 커피숍에선 직원들부터가 카운터에 놓인 명부 작성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작성을 안내하기는커녕 몇몇 고객이 먼저 “여기에 적으면 되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대로 펼쳐져 있고 개인정보는 전혀 가려지질 않았다. 커피숍 직원은 “정보를 가려야 한다는 걸 몰랐다. 정 불안하면 다른 곳을 이용하라”고 답했다.

이전에 기록된 명부는 안전한 곳에 따로 보관해야 한다는 규정을 아는 곳도 찾을 수 없었다. 성동구에 있는 한 식당에서는 의무화 첫날인 지난주 일요일부터 기록된 종이가 전부 입구에 비치된 명부에 함께 꽂혀 있었다. 사장인 A 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그대로 뒀다”고 했다. 인근의 한 제과점은 구겨진 명부를 잠그지도 않은 카운터 서랍에 넣어둬 찾는 데 한참 걸리기도 했다.

업소 주인들은 명부 작성의 의무화 외엔 관리 지침을 안내받은 적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성동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 씨(53)는 “구청에서 4주 뒤 없애란 안내문을 한 장 주긴 했지만 나머지 세부적인 내용은 듣질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방문한 업소 가운데 2곳만이 고객 정보가 노출되지 않게 해뒀다. 두 곳도 규정은 몰랐다고 한다. 영등포구에 있는 한 카페는 “누가 시킨 건 아니다. 내가 손님이라도 찜찜할 것 같아서 종이를 오려 붙여 이름과 전화번호를 가려 뒀다”고 했다. 또 다른 성동구의 한 커피숍은 한 고객이 지적을 한 뒤에야 조치했다고 털어놓았다. 커피숍 사장은 “오전에 찾아온 손님이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느냐고 말해 급하게 포스트잇으로 이전 고객들을 가렸다”고 말했다.

○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지자체 적극 안내해야

보건복지부 기준에 따르면 출입자 명부는 세세한 관리 규정이 따른다. 명부를 쓸 때 가급적 타인의 개인정보를 볼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하며, 기존 명부는 잠금 장치가 있는 장소에 별도로 보관해야 한다. 4주가 지난 명부는 파쇄하거나 안전한 곳에서 소각해야 하고, 질병관리본부나 지자체의 역학조사 외의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제공하면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행정처분이 내려지거나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7월 말 자녀를 데리고 경기에 있는 한 키즈카페에 다녀온 이모 씨는 며칠 뒤부터 해당 업소로부터 여러 차례 홍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출입자 명부를 작성한 것 말고는 개인 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이 씨는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하려고 제공한 휴대전화 번호를 영리적 목적으로 마음대로 이용한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불쾌해했다.

방역당국도 수기 명부가 허위 기재와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현장 점검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개인정보가 잘 보호됐는지까지 확인하기엔 행정력에 한계가 있다. 좀 더 홍보에 신경 쓰겠다”고 토로했다.

한국역학회장을 지낸 성균관대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정해관 교수는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허위로 작성할 경우 방역망에도 구멍이 뚫릴 수 있다”며 “당국이 수기 명부에 대한 관리감독을 더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성 kts5710@donga.com·박종민 기자
#방역#개인정보#무방비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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