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참전용사를 패배자-호구로 불러”… 美대선 새 쟁점 부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7일 03시 00분


美언론 “2018년 프랑스 방문때 비 온다고 묘지 참배 취소시켜”
참전용사 단체 등 비난 성명… 바이든 “내 아들은 호구가 아니다”
군 출신 아들 거론하며 비판 가세, 트럼프 “완전한 거짓말… 좌파 개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전용사를 ‘패배자’ ‘호구’로 비하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 거센 후폭풍이 일면서 11월 3일 미 대선의 새 쟁점으로 떠올랐다. 집권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군인 사회와 친트럼프 성향 폭스뉴스까지 비판 대열에 합류한 가운데 4년 전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일부 군인이 돌아설 조짐을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 측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 시사매체 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미군 참전용사가 묻힌 묘지 참배 일정을 보고받자 “왜 가야 하나? 패배자(loser)만 가득하다”고 말했다고 3일 폭로했다.

당시 백악관은 악천후로 전용 헬기가 뜰 수 없어 참배 계획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비로 인해 머리 모양이 흐트러지는 것이 싫고, 묘지 참배가 중요하지도 않다고 여겨 접었다는 의미다. 폭스뉴스의 국가안보 담당 기자 제니퍼 그리핀 역시 “대통령이 미군 전사자를 패배자로 부른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애틀랜틱은 대통령이 당시 다른 대화에서 프랑스 북부 ‘벨로 숲 전투’에서 사망한 1800명의 미 해병대를 ‘호구(sucker)’라 칭했다고 전했다.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극도로 중시하는 미국에서 군 통수권자가 이들을 모욕했다는 보도에 군인 사회는 격분했다. ‘참전용사여 투표하라’ 등 관련 단체는 즉각 비난 성명을 냈다. 참전용사 및 현직 군인의 가족이 ‘내 남편, 아버지, 아들은 호구가 아니다’라고 비판하는 동영상 광고도 등장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4년 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군인 중 이번 발언으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이들이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역겨운 발언이다. 내 아들은 호구가 아니다”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바이든 후보의 장남 보는 2008∼2009년 이라크에서 복무했고 2015년 뇌종양으로 숨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전 포로였던 공화당의 거두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 대해 2015년 “전쟁 영웅이어서 포로가 된 게 아니라 포로로 붙잡혀서 영웅이 된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2017년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할 때는 해병대 대장을 지낸 존 켈리 당시 국토안보장관의 아들 묘 앞에서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 (나라를 위해 희생)해서 얻는 게 뭐냐”고 했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켈리 장군의 아들 로버트는 2001년 9·11테러 이후 교전 중 전사한 유일한 미 장군의 아들이었다. 당시 동석했던 한 장군은 “대통령은 거래 관계가 아니라 남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것은 돈과 상관이 없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애틀랜틱 보도는 좌파가 개입한 의도적인 왜곡 기사라며 “완전한 거짓말이다.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맹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위터에도 “악한 급진좌파가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썼다.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도 대통령을 두둔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트위터를 통해 국방부가 발행하지만 편집권 독립이 보장된 일간지 ‘성조지’를 계속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이 매체가 미군의 각종 사건 사고를 잇달아 보도하자 국방부는 올해 2월 연간 예산 1550만 달러를 끊겠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9월 말까지 발행을 중단하라”며 폐간을 통보했지만 이번 파문이 불거진 후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폐간 결정을 뒤집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트럼프#미국대선#바이든#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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