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까지 아홉 곡이나 되는 교향곡을 작곡한 체코 음악 거장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의 말입니다. 어쩌다 기차가 작곡가의 사랑이 되었을까요.
드보르자크가 아홉 살 때, 그가 살던 프라하 교외 마을에 철도가 놓였습니다. 영국에서 처음 지역간 철도 노선이 탄생하고 20년 뒤의 일이었죠. 드보르자크는 증기를 뿜으며 달려가는 이 새로운 문명의 산물에 매혹됐습니다.
열여섯 살 때 프라하의 음악학교에 입학한 뒤엔 매일 아침 터널 위에 올라가서 프라하역으로 들고 나는 열차의 번호와 모습을 수첩에 메모했습니다. 그리고는 역에 가서 기관사나 열차 점검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습니다. 말하자면 ‘1세대 철도 마니아’였던 것입니다.
그의 작품 중 실제로 기차를 묘사했다고 여겨지는 작품도 있습니다. 현악4중주 12번 ‘아메리카’ 마지막 4악장의 빠르고 흥겨운 시작 부분은 기차여행의 흥겨움을 그렸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유명한 신세계에서 4악장의 경우 ‘잔짠 잔짠’하는 단2도 음형이 영화 ‘조스’(1975) 주제음악과 비슷하다는 평이 있지만, 이 부분도 기차를 연상시키는 육중함과 점점 에너지를 쌓아나가는 느낌이 기차 출발과 비슷합니다.
이 두 작품의 경우는 드보르자크가 직접 기차와의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44세 때 쓴 교향곡 1악장의 시작부분에 대해서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체코인들을 싣고 국경절 축제에 오는 기차가 역에 닿는 순간 이 주제를 떠올렸다”고 말했습니다.
기차의 어떤 점이 대작곡가를 사로잡았을까요. 그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양한 부품이 수많은 부분을 구성하는데 그 모두가 제각기 중요하잖아. 부품들 모두가 각기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 작은 레버를 움직이면 큰 지렛대가 움직이기 시작해. 크고 육중한데도 토끼처럼 재빠르게 움직이잖아.”
낭만주의 황금기의 음악가가 기차 같은 첨단의 물품에 매혹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예술을 해석하는 데 새로운 빛을 던져줍니다. 기차가 상징하는 힘과 현대성은 이어 20세기에 불어 닥치는 모더니즘의 가치와 많은 것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드보르자크가 한 세대 늦게 태어나 새로운 현대적 예술 사조들이 마구 분출했던 1910년대에 활동했다면, 그는 당대 유럽을 이끄는 선구적인 예술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평생의 사랑이었던 기차는 드보르자크의 수명을 단축시켰습니다. 1904년 4월, 예순 두 살이었던 그는 아직 바람이 찬데도 다른 날처럼 프라하 기차역에 기차를 보러 나갔다가 그만 독감에 걸렸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드보르자크 이후에도 기차가 가진 힘과 현대성을 표현한 작곡가들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작곡가 오네거가 1923년에 작곡한 ‘퍼시픽 231’이 그 하나입니다. 오네거는 드보르자크처럼 기차 마니아였고, “나는 여성이나 말보다 기차가 좋다”라는 말도 남겼다고 합니다.
1993년에는 영국 작곡가 마이클 나이먼이 ‘MGV’라는 관현악곡을 발표했죠. 프랑스 고속열차 TGV의 파리-릴 노선 개통을 기념해 만든 음악입니다. 유튜브 채널 ‘유윤종튜브’에서 그가 쓴 기차를 연상시키는 작품들과 오네거, 나이먼의 작품들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8일)은 드보르자크의 179번째 생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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