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관심이 처음엔 옷(패션)에서 음식(요리), 요즘엔 집(인테리어)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다음 붐을 일으킬 순서는 바로 일상 속 공예품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원장은 18일 개막하는 ‘2020 공예주간’의 주제인 ‘생활 속 공예두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타인(他人)의 시선보다 자기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동안엔 멋진 집과 자동차, 화려한 옷 등 외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면, 이제는 집 안에서 자신을 위해 즐길 수 있는 공예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컵(Cup)’ 전시회에서 만난 김 원장은 “늘 보고, 만지고, 숨 쉬고, 입을 대고 사용하는 것이라면 대량생산된 플라스틱 용기보다, 내 몸을 해치지 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물건들로 채우고 싶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번 공예주간의 주제인 ‘생활 속 공예두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국민공모 통해서 선정된 슬로건입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사회적 거리두기’ 잖아요. 우리는 역으로 ‘생활 속 공예두기’로 정했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에서 자신은 여름이 제일 싫다고 했습니다. 더위 때문에 옆에 있는 동료 재소자들끼리 떨어져 있어야 하고, 사람이 사람을 혐오해야하는 계절이라는 이유죠. 따뜻한 온기를 담은 공예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상 속에서 ‘생활 속 공예두기’를 실천하는 방법은.
“제대로 된 그릇과 컵을 쓰는 데서 출발하는 겁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냉장고에서 반찬통째로 거내서 먹고, 물은 생수병을 들고 마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집에서 있는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는 거죠. 물은 컵에, 와인은 와인잔에, 막걸리는 호리병에 담아 마시고, 반찬도 접시에 담아 먹는 게 공예생활의 첫걸음이죠. 우리의 전통 막걸리도 플라스틱 비닐통에 마시기보다는 청자로 된 호리병에서 따라마시면 훨씬 술맛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 용기의 마법입니다.”
―공예란 무엇인가요.
“최근 서울옥션에서 하는 공예전시회를 갔더니 주제가 ‘The Beautiful & The Useful’이었습니다. 실용적으로 쓰는 것이면서 심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공예라고 생각합니다. 미술품의 경우는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인데, 공예는 곁에 두면서 즐기는 것이죠. 공예란 우리의 삶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요즘 성수동과 한남동에 있는 편집숍에 가보면 외국산 테이블, 식탁, 접시 뿐 아니라 국내 작가들의 공예품도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서울옥션, K옥션같은 경매시장에서도 공예품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점점 ‘생활 속 공예두기’ 문화가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생활 속 공예품을 사랑했던 사례로 법정스님을 기억했다.
“법정 스님이 쓰신 ‘무소유(無所有)’란 책에 보면 자기는 모든 물욕을 버리고, 책에 대한 욕심까지도 극복을 했는데, 다기(茶器)에 대해서는 욕심만은 버릴 수 없다고 했어요. 당신이 해결한 방법은 새로운 다기가 생겼을 때는 꼭 하나만 유지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동안 자신이 쓰던 옛 다기는 주위에 선물하면서, 다기는 꼭 하나만 소유를 하면서 본인의 물욕을 경계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신 법정스님이 책보다 다기를 더 사랑하고 갖고 싶어 하셨다는 사실이 굉장히 감명 깊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공예주간이 봄에서 가을로 연기됐는데요.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른 행사진행은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오프라인, 온라인 둘 다 준비 중입니다. 지역에서 공예주간에 참여하는 425개 공방은 개별적으로 행사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은 비대면 온라인 전시로 바꾸거나 인원을 제한할 예정입니다. 공예주간 행사를 위해 홈페이지에 온라인 영상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유튜브에도 ‘공예TV’를 개설해 관람객들이 직접 방문을 못하더라도 다양한 공예주간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는 지역에서 공방을 겸하고 있는 예쁜 카페도 소개합니다. 경남 산청군에 ‘파란홍차’라는 공방이 있는데, 인스타그램에 예쁜 카페와 공방으로 소문이 자자한 곳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예쁜 찻잔, 도자기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걸 좋아하는데, 이것도 또한 ‘생활 속 공예두기’ 문화가 확산되는 한 이유입니다.”
―요즘에는 일반인들도 도자나 목공, 염색, 한지공예 등을 배우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공예 클래스를 확대시킬 방안은.
“요즘 여성들 뿐 아니라 남자들도 공예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목공예는 색소폰 연주와 함께 장년층 남자들에겐 로망이죠. 그런데 일반인들이 어디에서 공예를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이번에 공예주간에 참여하는 공방이 전국 425개인데, 대부분 공방에서 공예 클래스도 진행합니다. 백화점이나 구청의 문화센터처럼,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공방에서 공예를 배울 수 있는 정보를 좀더 쉽게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공예 클래스를 조사해서, 동네마다 찾아볼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서 소책자 형태와 온라인 정보로 제공하려고 합니다.”
―직접 배워보고 싶으신 공예가 있으시다면.
“목공예를 배워 의자를 만들고 싶습니다. 목공예 중에서는 의자가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탁자는 그냥 두고 쓰는 것이지만, 의자는 사람이 수없이 앉았다 일어서기 때문에 정말 잘 만들지 않으면 금방 무너진다고 해요. 그래서 의자는 설계하고, 만들 때 더욱 더 정밀성이 필요합니다. 목공 장비를 개인적으로 장만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경기도 여주에 전문적인 장비를 갖춘 공예창작지원센터 1호인 경기창작지원센터가 생겼습니다. 그곳엔 전문적인 작가도 이용하지만, 일반인들도 시설을 이용해 배울 수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공예의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입니다. ‘생활화’는 사람들이 대량생산된 플라스틱 용품보다는 멋스러운 공예품을 가까이 두자는 것이고, ‘산업화’는 공예품의 유통망과 판로를 만들어 공예작가들이 맘놓고 창작할 수 있도록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공예의 세계화’는 아무래도 국내 시장으로는 협소하기 때문에 해외로 가야한다는 절대적인 명제입니다. 한때 K팝 가요계나 한국영화, 문학도 국내시장이 협소해서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시장의 한계가 있다는 숙명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노력을 20여 년 정도 하다보니까 요즘 결실을 맺으면서 무한대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 공예도 해외로 진출해야 인력도 소화되고, 발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것입니다. 세계화로는 우리 공예가 이탈리아 밀라노 위크, 프랑스 메종 오브제, 영국 런던 콜렉트 등 유럽과 미국에는 소개가 많이 됐는데, 정작 전통공예의 본산인 중국에는 진출한 사례가 별로 없습니다. 내년부터는 상하이, 베이징 페어에도 적극 나가서 중국 공예하고도 겨뤄보고 싶습니다.”
―공예산업화 측면에서 국내 공예시장의 규모는.
“2018년 공예시장은 4조2537억원 규모로 매년 커지고 있습니다. 공예산업에 참여하는 인구도 많아지고 있죠. 반면 공예인들의 사업규모가 영세한 데다, 50~60대 이상이 많고 젊은이가 적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젊은세대들에게도 우리 공예품이 고루하기 보다는 매력있게 다가서는 제품으로 인식돼야 합니다. 미술평론가 최범 선생은 우리가 계승해야 하는 것은 ‘전통공예’가 아니고, ‘공예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조선시대, 고려시대의 공예품을 똑같이 만드는 장인도 필요하지만, 공예전통을 이어받아 요즘 세대들에게도 시크하고, 핫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죠. 그래야 보다 많은 젊은 인력들이 공예산업에 뛰어드는 산업구조로 개편이 될 수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