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공연장을 찾고, 입장권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스토어에서 산다?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료 온라인 생중계 공연이 늘어나는 가운데 관객이 직접 ‘공연장’을 찾아가 비대면 프로젝트를 접할 수 있는 ‘저드슨 드라마(취소선)’가 11일 막을 올렸다. 어떻게든 관객과 닿고자 하는 공연계 아티스트와 제작진의 고군분투가 담긴 공연이다.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으로 가는 티켓인 앱(‘저드슨 드라마’)을 내려받아야 한다. 무료다. 앱을 열면 곧장 서울과 경기 일대 지도가 나온다. 지도에 찍힌 20여 곳의 표지를 클릭하면 각 공연장과 공연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나타난다. ‘숨은 공연 찾기’ 같은 이번 작품을 찾아 나섰다.
#1. ‘비대면 시대의 새로운 협업, 도시 속 개인들이 함께 만난 흔적이 담겨 있다’는 공연 설명이 적힌 표지를 따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으로 향했다. 앱 지도에 표시된 식당 앞에는 빨간 공이 가득 담긴 인형 뽑기 기계가 있다. 돈을 넣고 크레인을 조작해 공을 꺼내야만 ‘진짜’ 공연을 볼 수 있다.
도합 3000원을 넣고 3번 시도 끝에 빨간 공 하나를 집었다. 공 안의 QR코드 종이를 스마트폰으로 인식하니 비로소 25분짜리 음원 파일을 들을 수 있다. 이 공연을 준비하며 아티스트들이 나눈 ‘날것’의 대화가 담겨 있다. 길 건너편 공중전화박스 안에는 또 다른 공연이 준비돼 있다. 전화기 옆에 숨겨진 작은 플라스틱 통을 열면 ‘S-say 이 안에 60쪽의 세포가 살아’라는 공연과 연결되는 QR코드가 나온다. 무용수들이 대화하고 몸을 움직이는 약 10분 길이의 공연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공연에 참여한 관객은 “낯선 장소를 찾는 여정 자체가 공연의 일부로 여겨졌다. 설레기도 했고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인다.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들어 새롭다”고 말했다.
#2. 관객이 작품에 관여하면서 보이지 않는 창작자와 교감할 수 있다는 점도 묘미다.
서울 중구 손기정체육공원에는 자신의 탐험가적 기질을 측정할 수 있는 체험형 공연이 마련돼 있다. 손기정 동상 곁에 숨겨 놓은 설명서를 찾아냈다. 설명서의 QR코드를 찍으니 테스트 음원파일이 열리며 ‘도보로 떠나는 여행이라 여분의 신발을 챙기려고 합니다. 몇 켤레를 챙기겠습니까?’ ‘벌써 도착한 한 예술가가 보입니다. 이 예술가는 다음 중 누구일까요?’ 같은 질문 예닐곱 개가 들린다.
각 질문의 보기 3개 중 자신의 생각에 맞는 것을 ‘05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뒤 ‘용의주도한 관찰자 타입으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좋아하는 유형 C’라는 결과가 문자메시지로 왔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불러일으키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 환영받음과 고마움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제게는 놀이와 퍼즐이 하나의 돌파구로 느껴진다’는 창작자의 설명도 받았다.
한 관람객은 “공연 관련 단서를 찾지 못한 순간도 있었는데 불만보다는 ‘삶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추석 연휴에 남은 ‘공연 보물’을 찾아다닐 계획”이라고 했다.
앞서 20일까지 일시 진행한 창작자 ‘E(조형준 손민선)’의 공연에서는 관객이 특정 장소에 들어서면 그곳에 설치해둔 카메라로 지켜보던 아티스트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공연, 전시는 어떠신가요”라고 말을 건넸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모든 영혼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새 헌법 제정위원회’라는 주제의 공연이 마련돼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창작 환경의 불확실성이 역설적으로 창작의 동기가 됐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장혜진 안무가는 “집에서 관람하는 온라인 공연을 넘어 관람객이 집을 나서 공연장을 찾아나서는 체험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신재민 프로듀서는 “공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놀이, 미션 등은 ‘생태민주주의’ ‘몸과 언어의 관계성’을 조명한다. 관객이 공연장을 벗어나 창작자들과 교감하는 공연 체험”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은 10월 31일까지 열린다.
::저드슨 드라마::
1960년대 미국 뉴욕 맨해튼 저드슨교회를 기반으로 활동한 실험적 예술가 집단인 ‘저드슨 댄스 시어터’의 활동에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다. 시각예술, 음악, 무용 분야의 저명한 예술가들인 이들은 우연성, 장르의 협업, 일상의 움직임을 예술로 가져오는 방법론을 공연에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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