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여성[이은화의 미술시간]〈130〉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4일 03시 00분


메리 커샛 ‘칸막이 관람석에서’, 1878년
메리 커샛 ‘칸막이 관람석에서’, 1878년
모던 아트의 포문을 연 인상주의는 1874년에서 1886년 사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여덟 번의 전시를 통해 최전성기를 누렸다. 5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인상파 전시를 거쳐 갔고, 이 중에는 여성도 3명 있었다. 미국에서 온 메리 커샛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의 길을 선택한 커샛은 22세 때 파리로 와 2년 만에 살롱전에 입상하지만 여성이었기에 주목받지 못했다. 1877년 살롱 출품작을 모두 거절당해 좌절하던 무렵, 에드가르 드가의 초대로 인상파 그룹의 일원이 된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자로 전향한 커샛의 초기 대표작으로, 파리의 코메디프랑세즈 국립극장 안 여성 관객을 묘사하고 있다. 극장이나 오페라하우스는 당시 파리 최고의 인기 명소였다. 공연뿐 아니라 멋쟁이 신흥 부유층을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현대 도시의 활기찬 생활을 그리고자 했던 인상주의자들에게도 극장은 매력적인 소재였다. 남성 화가들도 극장의 여성 관객을 종종 그렸는데, 대부분 액자 속 예쁜 전시물처럼 표현했다. 반면 커샛이 그린 여성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오페라글라스를 통해 뭔가를 유심히 보고 있다. 왼쪽 상단 객석의 남자가 그녀를 응시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말이다. 미술의 역사에서 남자는 언제나 보는 주체이고, 여자는 보이는 객체였다. 커샛은 기존의 관념을 깨고 여성을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이자 보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1878년 이 그림이 미국에서 처음 전시됐을 때 ‘남성의 힘을 능가한다’는 호평을 들었고, 이듬해 인상주의 전시에서도 드가 작품과 함께 유일하게 비난을 받지 않았다. 여성은 미술대 입학도 불가하던 시절, 불리하고 차별받는 환경 속에서도 커샛은 평생 붓을 놓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1904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보는 주체로 등장하는 그림 속 여인은 스스로의 운명을 당당하게 개척한 화가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메리 커샛#칸막이 관람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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