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한 가운데 미 국무부는 7일로 예정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한국 방문을 연기한다고 어제 밝혔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일본 방문은 4∼6일 예정대로 진행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감염은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 국면은 물론이고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에도 큰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치료 일정이 장기화되면 선거운동은 물론이고 대선 일정까지도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리더십 혼돈은 국제사회 질서는 물론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 정세도 혼란에 빠뜨리는 연쇄 효과를 지닐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 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 지지를 촉구한 이후 정부는 이를 지렛대 삼아 북-미 협상 분위기 조성에 매달려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입원과 폼페이오 방한 무산으로 이런 구상을 발전시킬 동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대선 막판의 ‘옥토버 서프라이즈(10월의 이변)’ 가능성은 물 건너가는 상황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일본 방문은 예정대로 진행하면서도 방한을 연기한 것은 미국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한국이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우려를 낳는다. 미 국무부는 “도쿄에서 예정된 쿼드(Quad) 외교장관 회의는 인도태평양 지역 현안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이 참여하는 회의여서 취소가 어렵다는 것이다. 매번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내세우며 반중(反中) 전선 구축에 미온적인 한국에서 외교적으로 얻어낼 것이 없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비핵화는 외면한 채 남북 관계 개선에만 집착하는 우리 정부에 대해 미국 조야(朝野)는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비핵화와 연계되지 않은 종전선언은 비핵화 협상의 유효한 카드를 버리는 것으로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접근법이다. 여기에 북한의 우리 공무원 피살 사건까지 겹쳤다. 한국 정부가 북측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남북 접촉 재개를 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데 대해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회의적 반응 일색이다.
미국 내 정치 상황이 급변하고 대선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반도 안보 지형도 외부 변수에 쉽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종전선언 분위기를 몰아가서 한 건을 만들어 내는 데 매달릴 그런 시기가 아니다. 냉정하게 우리 외교 현실을 진단하고 대선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