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경지 넘보는 경찰 견공들
난 경기북부청 여섯 살 체취증거견
2018년 강진 여고생 살인사건, 올해 의정부 탈북민 실종사건 등
5년간 시체 26구 찾아냈죠
익숙한 냄새가 나. 코를 갖다 대고 킁킁. 아무 냄새가 안 난다고? 그래, 사람들은 거의 모르지. 하지만 가축 사체 썩은 냄새와는 다른 뭔가가 있어. 가만히 주의를 기울여.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다가가. 역시나. 이건 바로 ‘시체’ 냄새야.
깜짝 놀랐어? 웬 오싹한 공포영화인가 싶지. 하하, 너무 겁먹지는 마. 소개가 늦었네. 난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 소속된 경찰견 ‘미르’라고 해. 올해 여섯 살로 혈기왕성한 ‘체취증거견’이지. 벌써 5년 차야.
내 직업이 낯설겠지만 한마디로 어딘가에 매장되거나 숨겨진 시체를 주로 찾고 있어. 그래서 다들 시체수색견이라고도 불러. 견종은 머나먼 벨기에 핏줄인 ‘말리누아’. 신체 사이즈를 공개하자면 65cm에 28kg. 지구력이 강해 산악 지형 수색에 강점이 있단 칭찬을 받아.
다들 2018년 6월을 기억할까. ‘강진 여고생 살인사건.’ 온 나라의 이목이 전남 강진군 도암면으로 쏠렸었지. 그때 나도 현장에서 다른 6마리 경찰견과 열심히 수색에 나섰어.
아마 정상 뒤편 어디쯤이었을 거야.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어. 경찰 동료들이 우리에게 “앉아, 앉아” 했는데, 내가 움찔움찔거렸어. 대표 시그널인 내 ‘바짝 세운 꼬리’를 보더니 그들도 눈빛이 딱 달라지더군. 내가 곧장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지. 실종됐던 여고생이 9일 만에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된 순간이었어. 그 사건을 포함해서 내가 지금까지 찾은 시체는 무려 26구나 돼.
내가 경찰에 투신한 건 2016년 6월부터야. 아기 티를 막 벗은 한 살 때였지. 원래 경찰견 배지를 달려면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해. 경찰견으로서의 품성이나 사회성을 지켜봐야 하거든. 특히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없어야 해.
아, 물론 성격만 좋다고 경찰견이 될 순 없어.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 더 필요해. 먼저 ‘공’에 대한 집착이 강해야 해. 뜬금없다고? 우리들에겐 공놀이가 성과를 올린 뒤 주어지는 최고의 보상이거든. 그리고 아무래도 신체적으로 장애가 없는지도 중요하지. 예를 들어, 다리가 비틀어진 체형이면 체력이 빨리 떨어지거든.
이런 조건을 다 만족해도 마지막 코스가 남아있어. 약 6개월 동안 기초훈련을 잘 받아야 해.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이 과정을 제대로 통과한 건, 전국에서 나를 포함해 17마리뿐이야. 특히 난 전공 분야에 맞게 경기 포천시에 있는 ‘코리아 경찰견 훈련소’ 등에서 시체 냄새를 분별해내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았어.
어떤 훈련이냐고? 음… 여러 개의 플라스틱 박스가 있다고 쳐. 그럼 후각을 최대한 발휘해서 시체 냄새가 나는 화학약품이 담긴 단 하나의 박스를 찾아 짖는 거야. 썩은 고등어 박스랑 섞어 놓으면 처음엔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나도 마찬가지였고. 연습과 훈련으로 경험을 쌓는 수밖에 없어.
최근 들어 이런 훈련이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아. 올해 8월 21일 경기 의정부시에서 탈북민 한모 씨(33)가 시신으로 발견됐어. 당시 경찰 202명이 투입돼서 9차례나 수색했는데도 찾질 못했지. 하지만 10차 수색에 내가 투입되자 게임 오버. 40분 만에 찾아냈지.
물론 항상 일이 순탄했던 건 아니야. 정처 없이 떠도는 치매 환자분들을 찾는 게 참 어려워. 그래서 경찰 동료들이 실종자의 고향이나 인간관계 같은 배경조사를 잘해줘야 해. 몇 가지 단서가 있어야 수색 범위도 좁힐 수 있거든. 특히 실종자 가족들에겐 우리는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라는 걸 잘 알아.
수색 없을 때도 나는 쉬지 않아. 하루 평균 4시간 정도는 꼭 훈련을 받아. 보통 산을 뒤지며 시료를 찾아. 시료는 내 ‘친구’가 군부대 협조를 받은 산에 2개월 전쯤 묻어 놓은 거야. 초반에는 낙엽만 걷어내면 찾을 수 있는 10cm 깊이의 땅부터 시작해. 지금은 1m 땅 속에 있는 것도 찾아내지. 종종 가시덩굴 안에 묻기도 하더라고.
아차. 내 ‘친구’가 누구냐고? 훈련이나 현장 지휘 같은 전반적인 사항을 관리하는 사람, ‘핸들러’라 불러. 정식 직위는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최영진 경위야. 최 경위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핸들러가 됐어. 그전에는 강력계 형사만 해왔는데, 2009년 자신이 담당했던 장기 실종 사건을 수사했지만 결국 피해자 시신을 못 찾았다더군. 정황상 피의자를 특정했지만 기소할 수가 없었대. 이 사건 뒤로 시신을 찾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거지.
최 경위한테는 내가, 나한테는 최 경위가 참 특별해. 서로가 처음이거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해. 둘도 없는 친구지. 언젠가 훈련 중에 시료가 묻힌 땅을 찾아 파다가 문득 고개를 뒤로 젖혀서 최 경위를 봤어. 근데 최 경위가 “너 지금 ‘여기 맞지?’ 하고 물어본 거지?”라며 웃더라. 친구가 웃어서 나도 기뻤어.
힘들 때 날 위로하는 것도 최 경위야. 난 지치면 꼬리가 내려가는데 그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채곤 공을 꺼내 기분을 들뜨게 해줘. 처음에는 최 경위가 “네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 그런데 요샌 아냐. “네가 말까지 했으면 얼마나 성가시겠어”라며 너털웃음을 짓더라니까.
최 경위도 이 일을 하며 많이 변했어. 놀라운 건 ‘냄새가 보인다’는 표현을 써. 사실 냄새는 보이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내가 수색하다 나무 주변을 돌고 파인 구멍에 고개를 박고 있으면 “냄새가 흐르는 길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 표현이 인상 깊더라.
가끔 최 경위한테 섭섭할 때도 있어. 최 경위의 또 다른 친구 ‘폴리’ 때문이야. 폴리는 한국 최초의 방화탐지견이야. 방화탐지견은 방화가 의심되는 현장에서 소방 수색팀이 조사해도 화인(火因)이 확인되지 않을 때 투입돼. 이 친구는 세 살 ‘래브라도레트리버’로 지난해 12월부터 활동했어. 가끔 최 경위가 폴리랑 공놀이하는 걸 보면 조금 샘이 나. 그걸 아는지 최 경위도 내 훈련 시간에는 폴리를 다른 장소로 보내.
마냥 질투만 하는 건 아니야. 폴리도 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거든. 그 녀석은 인화성 물질 8가지에 반응을 해. 시너와 경유, 등유 같은 거 말이야. 사실 화재 현장에서는 인화성 물질도 함께 타. 그리고 소방이 물을 뿌리니 씻겨 나가기도 하지. 폴리는 희미한 냄새만으로도 인화성 물질을 찾아내야 해. 반응을 보인 5건 중 3건은 벌써 방화범을 잡았대. 역시 같은 경찰견 동료라 듬직하더라고.
실은 난 요즘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어. 다들 잊지 않았지? 올해 8월 강원 춘천시에서 인공 수초섬 고정 작업을 하던 배가 전복돼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잖아. 나랑 최 경위는 8월 중순부터 일주일에 2번씩 현장 수색을 하고 있어. 그런데 아직 그 ‘실종자’ 한 분을 찾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까워. 가족들은 “더 이상은 무리다”며 말리지만 우린 그게 안 돼.
우리 관할 지역도 빠짐없이 수색하고 있어. 요즘 남양주시 삼패공원에서 가평군 강가 수풀 지역까지 돌아다니면서 모든 수색 범위를 ‘지우고’ 있어. 이건 우리끼리 쓰는 용어인데, 지역을 조금씩 나눠 돌면서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이곳엔 시신이 없다’고 믿고 수색을 멈추는 거지. 우리 힘이 닿는 데까지는 낱낱이 수색해보는 게 남은 가족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해.
누군가는 매번 시체 냄새를 맡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 난 시체 냄새가 나쁜 냄새라고 생각하지 않아. 꼭 찾아서 가족 품에 돌아가게 할 ‘마지막 끈’이지. 은퇴하는 그날까지 난 실종자와 죽은 이들의 잔흔을 쫓을 거야. 혹시 길을 가다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 강아지들을 보면 나와 폴리를 떠올려 줄래. 최선을 다해 인간을 돕는 개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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