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학대정황 알고 10차례나 상담했지만, 16개월 입양아는 끝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6일 03시 00분


학대흔적 안고 숨진 16개월 입양아

“애가 일주일째 음식을 제대로 먹질 않아요. 아무리 애써도 안 먹으니 화가 나요. 불쌍히 여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13일 세상을 떠난 A 양은 아직 만으로 두 살도 되지 않은 갓난아이였다. 하지만 엄마(33)는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어 화가 난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를 ‘불쌍히 여기고 싶어도’란 표현도 썼다. 동아일보가 확인한 지난달 엄마의 진술 내용이다.

A 양은 올해 2월 새로운 가족의 품에 안긴 입양아였다. 하지만 8개월 동안 여러 차례 의심스러운 일들이 벌어졌다. 입양기관은 10여 차례나 상담을 진행했으며, 아동학대 의심 정황이 발견돼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경찰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경찰도 3번이나 아동학대 혐의로 조사에 나섰다. 아이의 죽음을 막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뜻이다.

○ “체중 1kg이나 빠진 아이, 가정방문도 거부”

입양기관 등은 5월부터 학대 정황을 인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입양기관 측은 “진행한 상담 내용이 일반적이지 않아 담당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알렸다”며 “규정상 입양아 사후 관리 면담은 4차례 시행하도록 돼 있다. 10차례 넘게 진행한 것은 뭔가 의심스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식적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A 양과 관련해 신고가 처음 접수된 건 5월 25일. 병원에서 아이 몸에서 멍을 발견해 기관에 신고했다. 그런데 하루 뒤 조사에 착수한 경찰은 혐의가 발견되지 않는다며 내사를 종결했다. 6월에는 “아이가 차 안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 7월에 부모를 입건해 정식 수사에까지 나섰지만 ‘혐의 없음’으로 판단하고 불기소 의견으로 8월 검찰에 송치했다.

두 차례나 별다른 조치 없이 끝난 뒤에도 A 양의 상황은 계속 이상했다. 입양기관은 지난달 “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에 엄마에게 연락해 “소아과를 방문해 A 양의 상태를 알려 달라”며 “가정을 방문해 확인하겠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엄마는 “건강상 문제가 없다. 평소보다 잠을 많이 잘 뿐”이라며 가정방문을 거절했다고 한다.

담당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해당 기관은 지난달 25일 입양기관에 “A 양의 체중이 5월 진료 때보다 1kg 정도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기관 관계자는 “한참 몸무게가 늘어날 시기에 오히려 빠진 건 아동학대로 충분히 의심할 상황”이라고 했다. 인근 소아과 원장이 영양실조를 의심해 신고했지만 이때도 경찰은 내사 종결로 마무리했다. 당시 “아이가 입안 상처로 이유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부모 측 해명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경찰은 9월 23일 소아과 원장을 상대로 신고 내용을 조사했고 A양 사망과 관련해 이달 13일 추가로 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5일 “점검단을 구성해 신고 3건을 규정에 맞게 처리했는지 확인하겠다”며 “사망 사건과 함께 이전 신고 내용도 재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A 양은 13일 오전 의식을 잃은 채 서울 양천구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오후 6시경 사망 판정을 받았다. 처음 학대 정황이 포착된 뒤에도 약 5개월 동안 부모와 함께 살았던 아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 “부모, 입양 심사에선 적극적 자세”

2월 3일 A 양을 입양한 부모는 이전 심사 과정에서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입양기관에 따르면 부모는 입양을 진행하며 열정적인 자세로 임해 긍정적인 점수를 받았다. A 양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도 강했고, 양육과 교육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관 관계자는 “가정 조사에선 별다른 문제점이 없었다. 하지만 학대 정황을 발견하고도 비극을 막지 못해 모두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관계기관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아동학대는 부모의 반발이 거셀 경우 보호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눈에 보이는 멍이나 상처 등 뚜렷한 증거가 없으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고 한다.

경찰 여성·청소년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아동학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주도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기관이 명확하게 판별해주지 않으면 경찰로선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보호 조치가 절차적으로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동권리보장원(전 중앙입양원) 관계자는 “관계 기관이 검찰이나 법원에 직접 청구할 수 있는 절차가 있긴 하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쉽지 않다”며 “결국 현장에서 경찰에 협력을 부탁할 수밖에 없는데, 부모가 반대하면 경찰이든 관계기관이든 책임지고 나서기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사망한 A 양의 부모는 현재 경찰 조사에서 “아이가 다친 건 걸음마를 배우다 넘어져서 입은 상처”라며 아동학대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응형 yesbro@donga.com·한성희·박상준 기자

이규열 인턴기자 연세대 경영학과 수료
#아동학대#상담#16개월#입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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