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전에서 못한다는 말을 듣는 것과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건… 정말 가혹해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에서 4인조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는 연습생 시절 겪었던 혹독한 경쟁을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다른 멤버들도 카메라를 응시하며 “행복한 분위기는 아니다”며 평균 5년의 연습생 시절을 토로했다. 이 다큐는 14일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2위에 올랐다.
최근 케이팝(K-POP)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걸그룹 트와이스가 올해 4월부터 유튜브에 9편으로 나눠 공개한 ‘트와이스: 시즈 더 라이트’는 1회 조회수만 500만 회를 넘겼고 나머지 회차도 비슷한 수준이다. 방탄소년단(BTS)을 담은 ‘브레이크 더 사일런스’는 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자체 플랫폼인 위버스에 공개돼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과거에도 아이돌의 매력을 영상에 담으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대부분 영화 제작에 그쳤다. 슈퍼주니어가 주연을 맡은 코미디 영화 ‘꽃미남 연쇄 테러 사건’(2007년), H.O.T.가 출연한 판타지 영화 ‘평화의 시대’(2000년) 등이다. 2010년대 이후 아이돌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브이로그가 인기를 끌었지만, 장편 다큐로 담아내는 건 최근 흐름이다.
아이돌 다큐가 각광받는 건 팬들이 스타들의 화려한 모습 너머 무대 뒤편의 진솔한 심경까지 느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멤버 개개인이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는지, 왜 아이돌이 되기를 결심했는지, 어떤 고난을 거쳐 성공했는지를 보여주면서 인간적인 울림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팬들은 “매번 완벽하고 반짝이는 무대를 선사하는 블랙핑크가 두려움과 압박감을 자주 느끼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BTS가 월드투어 후 백스테이지와 호텔방 안에서 힘들었던 기억을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위로를 많이 받았다”는 반응이다.
아이돌의 삶을 솔직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건 감독의 독립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빠듯한 스케줄에 몸이 망가져 괴로워하다가도 무대 위에서는 티를 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등 생생함을 확보하려면 소속사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 게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블랙핑크 다큐를 찍은 캐롤라인 서 감독은 YG엔터테인먼트나 넷플릭스 소속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창작자의 의도가 최대한 반영된 만큼 소속사로서는 꺼릴 수 있는 연습생 시절 이야기까지 구체적으로 다뤄 ‘홍보용 영상’으로 전락하지 않았다는 평이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블랙핑크 멤버들도 (기획 의도를 받아들여) 자신의 솔직한 면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며 “가수로서의 성공은 물론 아티스트로서의 삶과 쉬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두루 담았다”고 했다.
영화관에서 흥행하기 쉽지 않은 다큐 영화가 넷플릭스 유튜브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활로를 찾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영화관에서 개봉했을 땐 팬들 위주로 관람하는데 그쳤지만, 이젠 누구나 스마트폰이나 TV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OTT를 통해 아이돌 다큐가 성공하면서 다큐 영화의 유통 사례를 만들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침체된 영화계에도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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