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뇌 손상으로 8년 동안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네덜란드 남성이 수면제 한 알을 복용한 지 20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고 호주 9 뉴스,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이 일제히 보도했다.
최근 출간한 의학 전문지 코텍스(Cortex) 11월호에 리처드(Richard)라는 이름으로만 공개된 이 37세 남성은 2012년 고기를 먹다 목이 막혀 질식한 후 저산소 허혈성 뇌 손상을 입고 기본적인 신체 능력을 상실했다. 리처드는 눈을 깜빡이며 질문에 응답할 수는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못했고, 음식도 튜브를 통해 먹어야 했다.
그는 상태를 설명하는 공식적인 진단 없이 요양원으로 이송됐다. 8년 세월 동안 그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저반응성 장애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의사가 요양원에 새로 왔다. 리처드의 치료를 이어받은 그는 어떤 종류의 치료가 필요한지 파악하기 위해 신경학적 검사를 했다.
평가 결과, 환자는 자발적 움직임이 완전히 부족(운동장애)하고 말을 전혀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휠체어에 묶여 있었고 영양공급 등 모든 일상생활을 간호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의사들은 수면제가 혼수상태 환자를 깨웠다는 여러 연구 논문을 근거로 마지막 희망을 걸고 그에게 수면제인 졸피뎀 투약을 결정했다.
졸피뎀(10mg)을 1회 투여하고 20분 후 리처드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간호사에게 휠체어 작동 방법을 묻고 패스트푸드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걸었고, 몇 년째 아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사들은 리처드가 뇌 손상 3년 전까지만 기억했지만 쾌활하고 기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졸피뎀을 복용한 지 2시간 후 리처드는 점차 원래대로 돌아갔다. 의사는 식사 시간 전후에 하루 3회 졸피뎀(10mg) 약물 처방전을 주었다.
하지만 며칠 연속 졸피뎀을 투여한 결과 효과가 크게 줄어든 것이 눈에 띄었다. 환자가 말을 하고 움직일 수 있었던 시간은 점차 줄었고, 말하고 움직이는 능력도 떨어졌다. 보통 졸피뎀 1회 복용의 회복 효과는 하루에 한 번 약 5일 연속 나타났다. 이 기간이 지난 후에는 약물 투여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내성이 생긴 것이다.
이후 의료진은 다시 효과를 보기 위해선 2주~3주 졸피뎀을 끊는 휴지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졸피뎀 투여는 가족 방문이나 치과 진료와 같은 특별한 경우로 제한했다.
의료진은 2012년 사고 이후 리처드가 기본적인 작업을 수행하려고 할 때마다 감각 과부하로 뇌의 일부가 정지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리처드를 돌보고 있는 암스테르담 대학 의료 센터의 한 연구원은 “뇌를 큰 현악 오케스트라와 비교할 수 있다. 리처드는 첫 번째 바이올린이 너무 큰 소리로 연주해서 현악 오케스트라의 다른 악기 소리를 죽이고, 서로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라며 “졸피뎀은 첫 번째 바이올린이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 연주하도록 해 모든 악기가 제대로 돌아가게 한다. 이 수면제를 투여하면 원치 않는 뇌의 과잉 활동을 억제해 말과 움직임을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졸피뎀을 투여받은 의식 장애 환자 20명 중 1명에게 일시적이나마 상태가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네덜란드 연구진들은 리처드와 같은 심각한 신경학적 문제를 가진 환자들에게 효과가 더욱 오래 지속되는 방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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