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5일 10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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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의 ‘제2 창업주’로 불린다.

아버지인 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삼성을 한국 대표 기업으로 키웠다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한국을 넘어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키운 최고경영자(CEO)였다.

이 회장의 기업 운영 전략과 각종 성공사례는 해외 유명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GE는 2014년 초 제프리 이멀트 회장이 진행한 ‘ GE 글로벌리더십미팅’에서 삼성의 경쟁력과 성공 노하우에 대해 집중 논의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미국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진이 서울 서초사옥과 수원 및 화성 사업장을 방문해 ‘삼성 웨이’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은 한국 주요 대기업 총수 중 글로벌 1위를 가장 먼저 달성한 사람”이라며 “북미, 유럽, 일본에 비해 기업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는 ‘이건희 경영학’이 따로 만들어져도 될 정도”라고 평가했다.

● 삼성 체질 개선 시작된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 회장은 중요한 순간마다 전체와 핵심을 꿰뚫는 표현과 비유가 담긴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탁월했다. 그의 메시지는 삼성은 물론 재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고 국가·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1993년부터 본격적인 ‘삼성의 미래 그리기’ 작업에 나섰고 ‘이건희 메시지’를 전달한다. 삼성은 1998년 3월 발간한 ‘삼성 60년사’에서 1993년이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표현했다.

그해 6월4일 이 회장은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1988년 영입한 후쿠다 타미오 디자인 고문으로부터 ‘경영과 디자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받는다.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로 불리는 여기엔 개선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담당자의 이야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수준 이하인 삼성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후쿠다 보고서는 6월7일 발표된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당시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표현까지 쓰며 그룹 전체에 위기의식과 개혁을 주문했다.

● 미래 비전 제시에 탁월한 경영자
1995년 3월 삼성전자 무선전화기 사업부가 품질에 문제가 있는데도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해 시장 불량률이 11.8%까지 올라가자 이 회장은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15만 대나 되는 제품(약 500억 원 어치)을 불태워 버리는 ‘화형식’을 진행했다.

삼성을 비롯해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성장하기 전이었다. 다들 단기성과에 매몰돼 있던 시절이었지만 이 회장은 훨씬 더 큰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주요 선진국 제품에 비해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가 모두 크게 뒤졌던 1996년 이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해외 글로벌 기업들만의 고민으로 여겨졌던 디자인을 21세기 기업 경영 최후의 승부처 중 하나로 지목했다. 이른바 ‘디자인 혁명의 해’ 선언이다.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TV, 반도체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게 된 2005년 이 회장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제2의 디자인 혁명’을 선언한다. 그는 “애니콜(당시 휴대전화 브랜드)을 뺀 나머지 삼성 제품의 디자인은 ‘1.5류’다. 이제부턴 품질이 아니라 디자인이다”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삼성 브랜드가 프리미엄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결정적 기여를 한 것 중 하나가 이 회장의 ‘디자인 혁명’ 선언이었다”고 말했다.

● 인재 중시와 위기의식 강조
평등주의가 만연한 한국 기업 문화 속에서 천재 혹은 우수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 회장의 남다른 식견이었다. ‘한 사람의 천재급 인재가 10만 명, 2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 회장의 신념은 삼성의 핵심 인재 육성과 확보로 표현되는 ‘S급’ 인력과 이들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최고 인재주의와 함께 두드러지는 이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위기의식을 끊임없이 강조한다는 점이다. 삼성이 자타가 모두 인정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뒤에도 ‘위기 강조 메시지’는 계속됐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물러났다 경영에 복귀한 2010년 3월 이 회장은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라며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독려했다.

이 회장의 마지막 신년사(2014년)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음에도 이 회장은 ‘마하경영’을 강조했다. 마하 속도를 내려면 제트기의 엔진, 기체, 부품을 모두 새로 설계해야 하는 것처럼 삼성 역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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