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혜택이 하나 생겼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맡게 된 다양한 역할과 활동 때문에 넘치는 만남과 행사로 점점 지쳐갔고, 이러다 언제 한번 쓰러지지, 하며 불안불안했는데 ‘이놈’ 덕분에 한동안 만남을 셧다운하고 혼자만의 재충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바야흐로 내향형의 시대가 왔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상황이 관계의 단절로 치닫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 고립자들은 와이파이조차 터지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졌다.
이때 이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같이 있으며 또 혼자 있고 싶은 모순된 마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더불어 혼자’ 살아야 하는 모순된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니 이건 모순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밸런스가 아닐까. ‘공동체의 유대’만을 강조한다거나,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며 냉소하는 것 모두 삶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뿐이다. 그리고 무너진 밸런스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고립되어 추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방문한 ‘느슨한 공동체, 재미있는 아파트’를 만들어 간다는 ‘위스테이’의 주민들이 직접 만든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혼자라면 어려운, 함께라면 할 수 있는 일.” 느슨하게 함께 존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속한 사회의 적절한 균형 속에 안전할 수 있다.
삶의 마지막 자락에서 “앞으로 ‘삶’을 쓸 기회가 다시 온다면 나는 이제 나 혼자 사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더불어 사는 정서, 더불어 사는 어떤 아름다움, 더불어 사는 의미들을 내 ‘삶’으로써 표현하겠습니다, 제발”이라며 후회하지 않겠다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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