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공모작 합동심사 날, 어느 심사위원의 발언에 나머지 심사위원들은 모두 마스크로 가려져 반밖에 보이지 않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희망적이며 좋은 이야기밖에 없었다.
공모전 ‘한일 나의 친구, 나의 이웃을 소개합니다’는 한국과 일본 간 관계 발전의 씨앗이 될 소중한 친구나 이웃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외교부의 행사다. 생활 속의 한일 민간 교류와 협력을 장려하고,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내려는 취지다. 올 7월 약 한 달간 총 191편의 이야기가 접수됐고, 이 중 민간심사위원단의 심사를 거쳐 10월 28일에 선정된 12개 이야기가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심사의 포인트는 ‘미래 지향적인가, 지속적인가, 그리고 앞으로 양국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인가’였다. 심사를 맡은 나는 191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편 한편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단지 몇 편만을 선정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출품작 중에는 자신이 한국에 오게 된 계기, 한국에 와서 알게 된 친구들과의 갈등과 우정, 교류 행사 등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경험을 다룬 작품이 많았다. 마치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심사숙고해 선정한 이야기들은 저마다 재미있는 사연을 담고 있었다. 일본인 남편과 일본 지바현에서 10년째 자부심을 가지고 막걸리를 빚는 한일 부부의 에피소드는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엄선한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전통 주조법으로 빚은 이 막걸리는 일본 전국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 충북 단양의 월악산국립공원에서 해설사로 활동하는 리에 씨의 이야기도 있다. 그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단양의 빼어난 경관과 역사를 소개하고, 한국인 동료들에게는 밝고 올바른 성품으로 일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민간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고려대와 와세다대 학생들의 교류 활동인 ‘성신학생통신사’는 “성의와 신뢰로 믿음을 쌓자”는 슬로건으로 히로시마 원폭 평화 기념식에 참석하고,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 등을 두 나라 학생들이 함께 논의하며 과거사를 직시하려 노력하고 있다.
심사위원장인 서울대 일본연구소 남기정 교수는 “알고 있는 것보다 시민사회의 한일 관계가 폭이 넓고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191편의 글을 통해 확신한 것은 ‘시민의 힘’이다. 이웃이며 형제 같기도 하고, 원수 같기도 한 한국과 일본의 사람들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직접 만나면 두꺼운 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가서는 기회를 가져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19로 직접 만날 수 없다면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괜찮을 것이다. 한일의 미래는 시민들의 지속적 노력에 달려 있다.
지난해 한일 양국 관계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한국에서는 일본 불매운동이 일어나 일부 일본 제품 판매가 격감했다. 한국에서 철수한 일본 기업도 있다고 들었다. 또 관광으로 일본을 찾던 한국인 관광객의 수가 지난해 8월부터 전년 대비 50% 이상 감소해 항공편의 지방 노선이 잇따라 멈췄다. 일본인 중에는 한국의 반일 감정을 우려해서 한국 여행을 꺼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올해에도 이어지는 한일 행사도 있다.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대 일본연구소와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온라인 개최한 ‘2020 한일 시민 100인 미래 대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10일에는 ‘16th 한일 축제한마당 2020 in Seoul’이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된다.
이 두 행사의 공통점은 22년 전인 1998년 10월 8일에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점이다. 나는 한일 관계의 바이블 같은 ‘한일 공동선언,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전문을 한일 관계가 어두워질 때마다 읽어본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과거 직시와 미래 지향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신으로 한국과 일본은 우정과 파트너십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