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다는 내용의 ‘2021년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를 작성한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재진입 관련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평가는 미 공군 국립항공우주정보센터(NASIC)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NASIC는 해외 국가들의 공군과 우주군의 무기 시스템 정보를 수집하는 군사정보기관이다. CIA의 평가가 단순한 추정을 넘어 정보자산을 통해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내놓은 결론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 중 한 명인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19일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18일 공개된 헤리티지재단 보고서에서 “북한의 ICBM이 정상궤도로 비행한다면 대기권 재진입체가 충분히 정상 작동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CIA의 평가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로 북한의 ICBM 기술 수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저자가 직접 분석 근거를 밝힌 것이다. 클링너 연구원은 CIA와 미 국방정보국(DIA) 등에서 20년간 일하며 한국 등 업무를 전담했고 CIA 한국 지부장도 지낸 바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CIA가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모든 근거를 알지는 못한다”면서도 “몇몇 전문가들은 정상궤도 발사보다 (오히려) 고각(高角) 발사 때 재진입체가 더 높은 열과 압력을 견뎌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2017년 화성-14(ICBM급)·15형(ICBM)을 세 차례 모두 고각으로만 쏴 올려 재진입 기술 검증이 아직 안 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클링너 연구원은 고각에서 성공했다면 정상궤도에서도 재진입 기술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우리 군은 현재로서는 북한의 ICBM 재진입 기술 확보를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 기술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전문가들 사이에)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에 대한 증거가 확신 수준으로 쌓일 때까지 이를 무시하려는(dismiss) 습성이 아직도 남아있다”며 “북한이 아직 특정 기술력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해당 기술력을 보유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19일 “민간 연구기관 보고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한미 정보당국이 관련 내용에 대해 확인한 바 없다”고 밝혔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모두 고각 발사만 한 상황에서 재진입 기술의 달성 가능성은 낮다는 게 한미 정보당국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동시에 북한의 ICBM 기술의 진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군 내 기류도 감지된다. 2017년 화성-14·15형 시험발사 이후 관련 기술이 급속히 진전됐을 가능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을 한미 당국의 예상을 깨고 ‘속전속결’로 이뤄낸 것처럼 ICBM 재진입 기술도 이미 달성했거나 실현이 임박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결정적 시기에 ICBM을 정상 각도로 쏴 올려 실증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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