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충격에서 회복되는 속도가 학력, 직종 등 분야에 따라 달라지는 ‘K자형 양극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실물시장은 침체된 반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각국이 늘린 유동성을 불쏘시개 삼아 자산시장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자산가와 비자산가들의 ‘자산 격차’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누군가에겐 악몽이, 누군가에겐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 코로나19 전보다 자산 격차 7억 원 늘어
서른넷 동갑내기 두 남자는 같은 대학을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닌다. 2006년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에 입학한 최 씨와 전 씨는 2012년 대기업에 나란히 입사했다. 두 사람은 돈독한 사이지만 집 이야기만 나오면 서먹서먹해진다. 최 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10억 원 넘는 아파트를 두 채나 가진 ‘집 부자’이고, 전 씨는 계약이 끝나면 집을 옮겨야 하는 ‘전세 난민’ 신세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올해 초 둘의 자산 격차는 4억3000만 원이었으나 현재는 11억3000만 원으로 벌어졌다.
출발은 전 씨가 빨랐다. 2014년 결혼하면서 부모에게 받은 5000만 원, 아내가 모은 돈 5000만 원을 보태 1억5000만 원으로 경기 안산시에 전셋집을 구했다. 서울 입성을 꿈꾸며 일개미처럼 월급을 모아 매달 150만∼200만 원씩 적금을 부었다. 하지만 날개 달린 서울 아파트 값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6월 눈여겨봤던 7억 원대 초반 서울 동작구 아파트는 어느새 2억 원 넘게 올랐다. 전 씨는 “대출 받아 집을 사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 얘기를 들으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아내와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 씨는 전 씨보다 적은 4000만 원을 갖고 2013년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파트 사고팔기를 반복하며 꾸준히 자산을 키웠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로 경기 성남시 분당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거래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최 씨는 갭 투자에 더 몰입했다. 금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대출금 상환 부담이 줄었고, 집값은 때마침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3월 기존 집 2채 중 1채를 팔고 인근 중형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샀다. 그가 보유한 두 채는 3월 이후 8개월 만에 각각 3억 원 넘게 올랐다.
최 씨는 “월급 받아 적금만 부어서는 미래가 안 보여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는데 불확실성이 커진 코로나19 사태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고 했다.
○ ‘K자형 회복’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
과거 위기에는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이 동시에 침체됐지만 이번에는 경제 각 분야가 비대칭적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로나19 충격 후 미 경제가 ‘투 트랙 회복’을 보일 것”이라며 학력, 업종 등 분야에 따라 회복 속도가 달라지는 ‘K자형 회복’을 전망했다.
윗목과 아랫목이 확연히 구분되는 ‘K자형 회복기’는 최 씨처럼 코로나19 타격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기회가 된다. 월급쟁이 원모 씨(40)는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대출을 무려 18개로 늘려 12억 원을 확보하고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원 씨는 “대출 이자만 400만 원이 넘지만 대출 비용을 만회하고도 훨씬 남는 수익을 벌어들일 것 같아 불안하지 않다”고 했다. 자산이 있는 부자들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도 강해지고 있다. KB금융지주가 지난달 내놓은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안정지향형’ 자산가 비중은 2011년 대비 20.2%포인트 줄어든 반면 ‘적극지향형’ 비중은 13.5%포인트 늘었다.
K자형 회복은 소비시장에서도 확인된다. 중국 경제연구소 게이브칼드래고노믹스에 따르면 현지 자동차 구입이 3월까지 감소하다가 4월 이후 늘고 있다. ‘BBA(BMW, 벤츠, 아우디)’로 불리는 최고급 차량 판매량은 3분기(7∼9월)에 전년 대비 20% 넘게 증가했다. 화장품 보석 등의 지출도 8, 9월에 두 자릿수 이상 증가율을 보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K자형 회복이 나타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커지고 사회적 갈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지난달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3%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가장 심각해질 문제로 ‘경제적 불평등’을 꼽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실물경제는 살아나지 않는데 불안한 자산시장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며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게 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 공급이 최선이다.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채용에 나설 수 있게 노동시간, 비용 등과 관련한 규제를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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