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탄생한 분당과 일산, 집값 격차 커지는 이유는[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9일 09시 00분


두 지역의 재물운 가른 핵심 요인은 수세(水勢)
자족형 신도시로 성장한 ‘장터 분당’, 탄천이 부의 원천
베드타운 수준에 머문 ‘농촌 일산’, 정발산의 기운 활용해야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은 분당신도시 전경. 동아DB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은 분당신도시 전경. 동아DB
‘삼십년하동 삼십년하서(三十年河東 三十年河西)’라는 중국의 유명한 속언이 있다. 누런 황토물이 흐르는 중국의 황허(黃河)가 잦은 범람으로 지형이 변해 강 동쪽에 있던 것이 서쪽으로 위치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유림외사(儒林外史)’에 소개돼 있는 말이다. 30년이 강조된 것은 지운(地運)의 변화에는 일정한 주기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90년대 초 수도권 1기 신도시로 출발한 경기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도 올해로 30년 역사를 꽉 채워가고 있다. 한때 ‘천당 아래 분당’ ‘천하 제일 일산’으로 불리며 쌍벽을 이루던 두 도시였지만, 30년이 지난 현재 그 위상은 크게 다르다. 여기에도 지운의 ‘30년 법칙’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동양의 상수철학(象數哲學)에서도 3, 30, 300 등의 수는 변화를 일으키는 ‘신성한 숫자’로 본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도 3일이 지나면 변화가 생긴다는 표현이다. 특히 30년은 지운(地運)의 변화를 살펴보는 기본적인 ‘시간 단위’로 활용된다. 땅의 기운은 30년이 꽉 차고 나면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 30년 주기를 시작하면 더 발전적으로 진화하거나 반대로 쇠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당과 일산은 어떻게 될까.

● 장터 분당과 농촌 일산의 예고된 미래
분당과 일산은 똑같이 수도권 신도시로 개발됐지만 땅의 생김새와 쓰임새가 완전히 다르다.

광주산맥의 두 산줄기가 동서 양쪽에서 허리춤처럼 두르고 있는 분당은 예전부터 교통 요지였다. 서울과 영남 지방을 연결하는 영남대로가 있던 이 지역은 일찌감치 낙생역, 판교원 등 먼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교통수단과 쉼터가 마련돼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답게 일찌감치 상권이 발달했다.

분당이라는 이름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분당은 일제강점기에 광주군 돌마면의 분점리(盆店里)와 당우리(堂隅里)를 합쳐 지어졌다. 분점리는 질그릇인 동이를 팔던 옹기점들이 있던 마을이고, 당우리는 불당 서낭당 등 당집이 들어선 동네였다. 주막과 장터 등이 들어서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매우 번창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기찻길인 철로에 밀려 한참 주춤했고, 광복 후에도 그린벨트에 묶여 개발이 더뎠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지나다 “앞으로 긴요하게 쓸 땅이니 개발하지 말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러던 분당은 1기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 강남과 가까운데다 판교 테크노밸리와 인접해 있어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른바 ‘자족형 신도시’에 걸맞은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지운이 제대로 발동한 셈이다.

반면 일산은 역사적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다. 신도시로 바뀌기 전 대부분 절대농지였던 이곳은 일산평야로 불렸고, 지역주민의 50%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이었다. 일산은 바로 옆에 한강을 두고 있어 장마철만 되면 침수가 되는 저지대인데다, 북한 침략에 대비한 군사 시설이 많다는 이유로 신도시 지정 때까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신도시가 조성된 이후 한때 분당보다 높은 녹지율을 가진 쾌적한 전원도시로, 또 남북통일시대의 미래 성장도시로 주목받으며 분당과 어깨를 겨뤘다.

안타깝게도 현재 일산은 서울 출퇴근자를 위한 베드타운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새로운 30년 주기를 앞두고 변신을 꾀하고 있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노선 등 각종 교통개선 대책과 일산동구 일대의 테크노밸리와 영상밸리 조성 등을 통해 일자리를 갖춘 자족도시로 거듭나려 애쓰고 있다.

● 분당, 탄천의 기운으로 재물 얻기에 유리

분당신도시의 부의 원천인 탄천. 동아DB
분당신도시의 부의 원천인 탄천. 동아DB
30년에 걸쳐 달라진 분당과 일산의 위상은 집값에서 두드러진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 10월 기준 분당구 서현동 시범한신 아파트(전용면적 84㎡, 1991년 입주)는 평균 13억 원에 거래됐다. 비슷한 시기에 입주한 같은 면적의 일산동구 마두동 강촌마을 아파트(라이프)는 평균 5억6000만 원에 매매됐다. 무려 2배 넘게 차이가 난다. 국토부가 발표한 2020년 아파트 공시가격 변동률도 두 도시의 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분당은 전년 대비 7.31% 오른 반면 일산지역은 오히려 2~4% 떨어졌다. 수년째 이어지는 전국적인 집값 상승에도 일산 아파트 주민들은 자산가치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을 풍수적 시각에서 찾으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분당과 일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물의 세력, 즉 수세(水勢)라고 할 수 있다. 분당은 도시를 남북으로 휘돌면서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탄천이 아름답다. 경기도 용인 법화산에서 발원한 탄천은 분당으로 들어온 뒤 여러 개울들과 만나 수량을 풍성히 하고 있다. 탄천은 지하철 수인분당선인 죽전역 부근에서 성복천(수원 광교산자락 발원)과 만나 합수(合水)하고, 다시 북상하면서 구미동 구미공원 부근에서 동막천(낙생저수지 발원)을, 야탑초등학교 인근에서 여수천(성남시 갈현동 발원)을 만나 더 큰 물줄기를 이룬다.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할수록 도시의 부를 살찌우는 데 이롭다. 또 재물을 뜻하는 물길이 이중삼중으로 모인 곳일수록 재물의 크기가 커진다고 해석한다. 결국 탄천은 분당지역 부의 원천인 셈이다.

● 일산, 마두산의 지기 활용한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나길

계획도시로 설계된 일산신도시 전경. 동아DB
계획도시로 설계된 일산신도시 전경. 동아DB


일산신도시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정발산. 산자락 아래로 단독주택 단지가 들어서 있다. 동아DB
일산신도시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정발산. 산자락 아래로 단독주택 단지가 들어서 있다. 동아DB

일산은 이와 반대다. 주변에 낮은 구릉성 산과 도시 중앙의 정발산(86.5m)을 제외하면 전체가 평탄한 지형이고, 제대로 된 물줄기는 없다. 도촌천, 한산천, 한류천 등 자그마한 개울이 있으나 서로 합수되지 못한 채 제각기 흘러 남쪽의 한강으로 빠져나간다. 도시의 물길이 한 데 모이지 못해 수량이 적은 데다, 한강도 일산신도시를 포근하게 감싸주지 못한 채 파주 쪽으로 곧장 빠져나가는 모양새다. 결국 물줄기가 일산신도시 전체의 부를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산의 주변 산들 역시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유독 춥게 느껴지는 이유다. 방풍이 잘 되지 않는 일산은 높은 빌딩과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도시건축 시스템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산은 주거 환경이 매우 쾌적하다. 드넓은 평지에 위치했다는 점 때문에 분당보다 아파트 동간 거리가 넉넉하고, 호수공원 등 접근성이 높은 공원들이 곳곳에 있다. 1980년대 젊은이들이 즐겨 찾았던 애니골 카페촌 등 문화적 명소도 많다. 서울로의 출퇴근 문제만 없다면 평생 살고 싶은 정도로 주민들의 주거 만족도가 높은 곳이다.

일산을 상징하는 호수공원. 동아DB
일산을 상징하는 호수공원. 동아DB
일산은 도심 가운데 불끈 솟은 정발산(중앙공원)이 인상적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인근 고봉산(206.3m)의 한 지맥이 평지에서 솟아난 형태인 정발산이 말의 모습이며, 현재 일산동구청이 위치한 마두동(馬頭洞)은 말의 머리에 해당한다. 이 말이 머리를 길게 내밀어 한강의 물을 마시는 형상이다. 일산 일대가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목이 마른 말이 물을 들이키는 형상) 명당이라는 해석의 배경이다. 특이하게도 정발산 바로 앞에 조성된 인공호수도 말이 물을 마시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평지 위에 야무지게 돌출한 정발산은 일산이 새로운 30년 주기를 맞아 문화성과 예술성을 갖춘 전원도시로 변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말(午)은 불을 뜻하면서 창조적 문화·예술 활동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서울 쪽으로 더 가까운 거리에 조성되는 고양창릉신도시, 고양덕은지구, 고양향동지구 등과 경쟁해 일산신도시가 돋보이는 비책이 되지 않을까.

안영배 논설위원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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