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변비부터 잦은 복통과 설사, 그리고 하루에도 100번씩 이어지는 트림. 저자의 진료실을 찾은 이 환자들 증상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잘못된 음식을 먹어서, 아니면 위장 기관에 문제가 있어서? 문제의 원인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바로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 ‘소확혐(小確嫌)’이다.
책 서두에 소개된 18개월 된 수미는 반년이 넘도록 변비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저자를 찾는다. 아이의 부모에게 저자는 “‘현상’에 불과한 변비에 초점을 맞추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변비는 병이 아니다”라고 한다. 문제는 이유식을 시작한 아이의 변이 딱딱해지면서 느끼는 통증이었다. 이것이 두려운 기억이 되었는데 가족들은 연유도 모른 채 계속해서 아이의 배변에 집착하고 있었다. 강요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이겨내도록 지켜보라는 처방이 내려진다. 시간이 지나고 수미는 더 이상 배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에 매달리는 요즘, 저자가 정반대인 ‘혐오스러운 기억’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나쁜 기억을 회피하거나 어설프게 컨트롤하면서 잠깐의 위안을 얻는 동안 더 큰 문제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감기다. 감기는 치료약이 없다. 그런데 ‘혹시’를 염려하는 부모와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한 의사의 합심으로 항생제 처방이라는 결과가 탄생한다. 항생제를 과도하게 복용하면 정작 필요할 때 내성 때문에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에도 순간의 소확혐 때문에 부모와 의사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놀랍게도 병이 없던 아이를 환자로 만든 사람이 가족이나 의사”라고 꼬집는다.
이 책은 강도 높은 나쁜 기억인 트라우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일상적 나쁜 기억에 집중한다. 매일의 평범한 삶에서 대다수가 저마다의 소확혐을 갖고 살아가는데도 그것을 다루는 데 미숙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1장의 기억에 관한 뇌과학적 지식으로 출발한다. 기억이 인지에서 출발해 저장되는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과정을 보고 나면 심리학은 물론 경제학, 공학이나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된 사례들이 등장한다. 왜 인간은 나쁜 기억을 피하는지, 그 방법은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 대목에서 책은 소아청소년의 질병을 넘어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론이 된다. 매일매일 ‘소확행’을 이룬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풀지 못한 소확혐을 쌓아가고 있다면 그것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 ‘치유’로 가면 결국 문제는 똑바로 선 자신의 자아, 주변에 대한 신뢰와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확혐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어설프게 개입해 사태를 악화시키기보다 중심을 잡고 스스로 헤쳐 나가도록 믿고 지켜봐주는 것처럼 말이다. 진료실을 넘어선 폭넓은 이야깃거리와 인간을 향한 따스한 눈길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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