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세균, 면역세포 기능에 영향
자폐증 등 정신신경질환과도 연관
유산균 섭취로 장내 유익균 늘려야
우리 몸에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으로 불리는 수많은 미생물이 공존한다. 그중 장내 미생물(장내 세균)이 소화기 질환은 물론이고 암, 비만, 호흡기 질환, 감염 질환, 우울증까지 연관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문가들은 ‘마이크로바이옴 시대’가 왔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선 ‘현대의학의 빅뱅’이라는 표현도 나오고 있다. 즉, 장내 세균이 인간의 정신과 건강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 역시 ‘세계를 바꾸게 될 세 가지’ 중 하나로 마이크로바이옴을 지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놓인 지금 마이크로바이옴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사람마다 고유한 장내 세균총 지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 이 유전정보를 게놈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게놈을 통해 신체의 모든 기관을 구성하고 서로를 구별할 각각의 특징을 갖는다. 최근 학계에서는 우리 몸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 집단을 ‘제2의 게놈’이라 지칭하며 주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를 합친 말로 몸속에 있는 100조 개의 미생물과 그에 대한 유전정보를 일컫는다. 세균과 균류, 바이러스가 포함된다. 손가락의 지문처럼 사람마다 각기 다른 마이크로바이옴을 지녔으며 이 차이에 의해 알레르기, 아토피, 비만 같은 대사 질환부터 장염, 심장 질환에 이르기까지 각종 질환의 발병률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생물들은 입, 코, 피부, 장 등 곳곳에 분포돼 있지만 그중 95% 이상이 장에 살고 있다. 장내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이유다.
장내 세균은 개인마다 제각각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 식습관, 생활습관에 따라 개인별로 다양한 군집 구조를 갖는다. 즉, 어떤 사람은 몸에 유익한 균(유익균)이, 어떤 사람은 유해균이 많다. 병에 걸린 사람일수록 유익한 세균은 줄고 나쁜 균이 득세한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구는 쉽게 배탈이 나거나 살이 찌는 것도 이러한 장내 세균 때문이다.
장내 세균의 균형이 깨지면 몸에 이로운 유익균 군집이 붕괴되고 해로운 균이 득세하면서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가 발생해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장내 세균, 치매·우울증과도 연관
특히 장내 세균은 면역과 관련이 크다. 정상적인 마이크로바이옴은 장내 점막 면역계의 발달과 성숙에 필수 요소다. 면역세포의 분화와 활성화를 유도하고 림프계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여 면역세포 기능에 영향을 준다. 실제 신생아 때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으면 면역체계가 형성되지 않아 알레르기질환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장내 세균의 균형이 파괴되면 장내 방어벽의 기능이 약해지고 장 점막이 손상된다. 장관 내에 존재하던 병원균과 독소, 항원 등이 혈류로 유입돼 감염성 질환이나 자가면역 질환 등을 초래한다.
장내 세균은 뇌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분비계, 신경계, 면역계, 대사물질 등을 통해 뇌와 장이 직접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장-뇌 축’ 이론이 이에 해당한다. 장내 미생물군이 자폐증,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우울증 등과 같은 정신신경계 질환과도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묵인희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는 알츠하이머병과 장내 미생물 간 상관관계를 밝혔다. 해당 연구진은 뇌 안에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을 축적해 치매를 유발시킨 쥐의 장내 미생물군이 정상 쥐와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치매 쥐에게 정상적인 쥐의 분변을 이식해 장내 미생물군의 변화를 유도한 결과 뇌 안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의 축적이 감소하면서 전신 염증 반응이 감소한 것을 발견했다.
일본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가 2016∼2017년 건망증으로 진료를 받은 남녀 128명(평균 연령 74세)을 대상으로 대변 속 세균의 DNA를 추출하고 장내 세균총의 구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치매 환자의 장 속에는 ‘박테로이데스’라는 균이 정상 환자보다 현저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테로이데스는 독성물질을 분해하는 인체에 이로운 세균이다. 해당 연구진은 “장내 세균이 치매 예방의 목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장내 생존율이 관건, 프리바이오틱스가 보조 효과
이 때문에 아예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을 이식해 질병을 치료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건강한 사람의 체내 유익한 균만을 선별해 내시경이나 관장을 통해 환자의 장(腸) 속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에선 널리 알려진 공인 치료법이다.
프로바이오틱스 섭취도 장내 세균총의 균형을 유지하는 한 방법이다. 프로바이오틱스란 체내에 들어가서 건강에 좋은 효과를 주는 살아있는 균을 말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정한 프로바이오틱스의 기능성은 △유익한 유산균 증식 △유해균 억제 △배변활동 원활 등이다. 장내 유익균의 증가, 유해균의 감소에 도움을 주고 장내 균총의 정상화를 돕는다.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고를 때는 균수와 장내 생존율, 프리바이오틱스의 함유 등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좋다. 균 자체가 아무리 좋아도 식도와 위를 거쳐 장까지 살아서 도달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유산균은 살아 있는 균이기 때문에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강력한 위산에 대부분의 균이 증발하고 정작 장에는 필요한 만큼의 유익균이 도달하지 않는다. 장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력이 적용된 제품이 효과적이다.
이와 더불어 프리바이오틱스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프리바이오틱스란 유익균인 프로바이오틱스가 좋아하는 영양분이다. 일종의 먹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바이오틱스는 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가 돼 유익균의 증식률을 높이고 프로바이오틱스가 장까지 제대로 살아서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 둘을 함께 배합한 제품은 시너지가 배가된다.
하지만 단기간 짧게 유산균을 섭취한다고 면역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유산균이든 효과를 보려면 한 달 이상 꾸준히 먹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지정한 프로바이오틱스 일일 권장량은 1억∼100억 마리다. 과다 섭취 시엔 장내 가스 발생, 설사 유발 등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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