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공수처, 위협받는 민주주의[동아 시론/김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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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법 처리과정서 국민 기만한 與
관용과 협치 무너진 입법독재 우려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민심의 경고
분노와 저항 커지면 정권 흔들릴 것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더불어민주당이 이달 1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야당의 거부권(비토권) 무력화와 공수처 검사 선정 기준 완화다. 이제 권력 입맛에 맞는 공수처장과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민변 출신 변호사를 공수처 검사로 선정할 수 있게 됐다. 정권 비리 수사를 막고 권력기관 장악을 위한 ‘정권보호처’가 곧 출범한다.

검찰개혁을 운운하며 공수처 출범을 정당화시킨 여권의 행태는 자기부정이고 국민 기만이다. 여당은 입만 열면 검찰개혁의 핵심은 민주적 통제라고 했다. 헌법에 없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는 공수처에 대한 최소한의 민주적 통제장치인 야당 비토권을 박탈하면서 어떻게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가 가능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했다. 이 얼마나 공허한 책임 회피인가.

개혁과 민주를 들먹이던 현 정권 국회에서 ‘편법, 밀어붙이기, 기습 상정, 합법적 토론 강제 종료, 강행 처리’ 등 독재 시절 통법부(通法部)에서나 있었을 만한 음습한 단어들이 다시 등장했다. 여당은 오랜 기간 국회에서 합의되고 존중되었던 규범과 절차를 파괴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부터 국회는 합의 정신에 입각해 원내 교섭단체 간의 협의를 통해 운영됐다. 상임위원장은 의석수에 따라 배분하고, 2004년부터 국회 법사위원장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 몫으로 배분했다. 실제로 국회법에는 의석 배정(제3조), 의사일정의 변경(제77조), 법률안의 본회의 상정 시기(제93조의2), 수정동의(제95조) 등 주요한 국회 운영과정에서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이런 규범과 관행을 무참히 무너뜨렸다.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쟁점 법안 처리에서 야당과의 협의를 거부했다.

헌법에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제46조②)고 되어 있다. 국회법에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제114조의2)는 규정이 있다. 여당 지도부는 강제적 당론을 앞세워 소속 의원들을 거수기로 전락시켰다. 이는 헌법과 국회법을 부정하는 반민주적인 행태다. 민주당은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가 민주주의가 궤도에서 탈선하지 않도록 하는 ‘가드레일’로 지목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무너뜨리면서 ‘신종 입법 독재’로 줄달음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4대 개혁 입법 중 하나인 사학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다. 야당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2005년 12월 새해 예산안 처리도 거부한 채 53일 동안 장외 투쟁을 이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4월 30일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와 야당인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를 청와대 조찬에 초대했다. 노 대통령은 “김 대표님, 이번엔 이 대표 손을 들어 주시죠” “야당 원내대표 하기 힘든데 좀 도와주시죠. 양보 좀 하시죠”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정국이 꼬여 여야가 싸울 때 야당의 손을 들어주는 특유의 포용적 리더십으로 정국을 돌파했다.

공수처 출범으로 당장은 권력 비리 수사가 조용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때가 정권 몰락의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집권세력이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독재라는 죽음의 길로 가기 때문이다. 리얼미터·YTN 조사(12월 11일) 결과, 민주당이 주도한 공수처법 처리에 대해 ‘잘못된 일’(54.2%)이라는 응답이 ‘잘된 일’(39.6%)이라는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심지어 엠브레인퍼블릭이 실시한 조사(11월 30일∼12월 2일)에서는 국민의 55%가 검찰개혁이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됐다’고 대답한 반면, ‘애초의 취지에 맞게 진행된다’는 응답은 28%였다.

이것은 단순한 조사 결과가 아니다. 민심의 경고다. 이를 무시하면 국민의 분노와 저항이 거세지면서 결국 정권은 무너진다. 실제로 한국갤럽 조사(12월 1∼3일) 결과, 차기 대선에서 ‘현 정권 유지’(41%)를 바란다는 응답보다 ‘정권 교체’(44%) 응답이 더 많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민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문 대통령이 공언한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를 종식시키기 위해선 역지사지의 자세로 평소 하던 생각을 뒤집어야 한다.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 노 전 대통령처럼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의회민주주의도 공수처도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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