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최근 방한했을 당시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우려를 비공식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의회나 비정부기구(NGO)들과 달리 행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워싱턴포스트(WP)의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17일(현지 시간) ‘한국의 새 전단금지법이 워싱턴의 반발을 촉발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렇게 전했다.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14일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기 전인 8~11일 이뤄졌다. 이 내용에 대한 본보의 질의에 트럼프 행정부의 한 당국자는 “비건 부장관이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게 미국의 우려를 전달했다”고 확인했다. 국무부는 이 법에 대해 공개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대북전단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비건 부장관의 조언에 한국 측이 충분히 귀를 기울이거나 반응하지 않은 것 같다”는 아쉬운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로긴은 “미국 의원들과 NGO들은 한국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달래기 위해 언론의 자유와 인권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하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마이클 매카울 의원이 “이 법이 북한의 독재정권으로 인해 수백 만 명의 주민이 겪고 있는 잔인한 고립을 심화할 수 있다”고 비판한 성명의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탈북자를 비롯해 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은둔의 왕국으로 정보를 유입시키는 것은 냉전 당시 독일과 마찬가지로 최종적인 통일과 평화를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전단을 접한 북한주민들이 정권의 거짓말을 알게 될 뿐 아니라, 비무장지대만 건너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긴은 워싱턴의 비정부기구와 인권단체들까지 법의 적용을 받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조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빨리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의 행동은 워싱턴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맨프릿 싱 미국 국제사무민주협회(NDI)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을 촉진하려는 이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인권 옹호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해를 끼치고, 더 많은 비민주적 요구를 하는 데 있어 북한 정권을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NDI는 북한을 비롯한 해외 독재, 권위주의 국가 내 인권 향상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정부지원 네트워크인 국가민주기금회(NED)의 지원을 받는 단체 중 하나다. NED의 린 리 아시아 부국장은 “광범위한 북한인권 공동체에게 이 법은 한국 정부가 평화협상과 남북대화라는 명목으로 (인권) 운동을 약화시키려는 또 다른 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로긴은 “바이든 행정부는 손상된 한미 동맹을 회복하고 싶겠지만 좋은 친구는 실수할 때 이를 지적해주는 친구”라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유리한 입장에서 북한에 관여하고 싶다면 한국에 자유와 인권, 평화의 동력을 훼손하지 말라고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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