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결함 많은 자본주의가 살아남은 비결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불안한 승리/도널드 서순 지음·유강은 옮김/1088쪽·5만5000원·뿌리와이파리

1883년 한 잡지에 실린 일러스트. 한 주에 6∼11달러를 버는 노동자들 위에 앉아 이익을 독점하는 자본가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1883년 한 잡지에 실린 일러스트. 한 주에 6∼11달러를 버는 노동자들 위에 앉아 이익을 독점하는 자본가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이 자본주의는 똑똑하거나 아름답지 않고, 정의롭거나 고결하지 않다. 또한 제 할 일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무엇으로 대신해야 할지를 생각할 때면 극도로 당황하게 된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의 말이다. 2009년 영국 BBC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느냐를 주제로 세계 27개국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11%만 자본주의가 순조롭게 작동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자본주의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고 새로운 경제체제가 필요하다고 답한 이들은 23%였다. 이런 거부감에도 한때 자본주의의 ‘적수’로 등장했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등 다양한 체제는 모두 자본주의에 패배했다.

‘불안한 승리’는 1860∼1914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세계사를 다뤘다. 지난해 출간된 책의 원제는 ‘The Anxious Triumph: A Global History of Capitalism’. 저자인 도널드 서순(74)은 영국 런던대 퀸메리칼리지 교수로 비교유럽사 분야의 석학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 자본주의의 첫 번째 세계화가 이뤄졌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주춤했다가 20세기 후반, 오늘날과 판박이인 두 번째 세계화가 완성됐다는 설명이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희생자가 발생하기 직전까지를 빅토리아 대호황기, 미국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막대한 부의 축적과 부정을 풍자적으로 그린 마크 트웨인의 소설 제목을 빌려 ‘도금시대’(鍍金時代·the Gilded Age)로 불렀다. 세계화는 요즘 일상적인 표현이지만 미국 의회도서관 서지 목록을 분석하면 1987년 이전에 출간된 책들 중 세계화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책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책은 ‘세계의 상태’ ‘근대화’ ‘대중 끌어들이기’ ‘세계를 마주하다’ 등 4부로 구성됐다.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접근법과 유럽,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아우르는 방대함이 돋보인다. 세계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제3세계의 미시적인 부분까지 들여다보고 있어 놀라우면서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흔히 떠올리는 경제학자의 난해한 자본주의사가 아니다. 경제사적 쟁점을 짚으면서도 정치 역사 종교, 심지어 문학까지 풍부한 사례들을 담고 있어 1000쪽이 넘는 두툼한 책 페이지가 빨리 넘어간다.

“우리 천조(天朝·중국)에는 모든 게 풍부해서 국경 안에 부족한 생산물이 없다. 그래서 우리 생산물을 대가로 해서 외부의 오랑캐가 만든 제품을 수입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유럽 나라들과 당신네가 천조에서 생산하는 차와 비단, 도자기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까닭에 호의의 표시로 광둥에 외국 상관을 설치하도록 허락했다.”

1793년 청나라 건륭제가 영국 조지 3세에게 보낸 서한의 일부다. 1820년 중국의 국민총생산은 나머지 전체 세계의 3분의 1 규모로 추정된다. 생산력과 기술에서 가장 선두에 섰지만 몰락한 중국과 위로부터의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 세계화의 넘버 원 자리를 다툰 영국과 독일, 미국의 전략이 펼쳐진다.

‘대중 끌어들이기’라는 제목이 붙은 3부는 자본주의의 세계화 과정에서 논쟁적인 국가의 역할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유일한 성공 기준은 체제의 생존이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변화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그 지배에 대해 가장 큰 위협은 기후변화라는 지구의 생태적 한계다. 책에서 많이 다루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진단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불안한 승리#도널드 서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