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알박기’에 나섰다. 12월 20일 돌연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2개월 전인 10월 23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서울시장은 절대 안 나간다”고 했던 그다. 10여 일 전인 12월 2일 국민의힘 초선 공부 모임 ‘명불허전 보수다’ 초청 강연 자리에서도 “(서울시장) 출마 의사가 없다”고 거듭 확인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한 속에서도 ‘수차례’, 그것도 ‘최근’까지 ‘절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출마하지 않겠다던 그의 약속은 결국 흔한 정치인의 허언으로 판명 나고 말았다. 이제 그도 말 바꾸기를 예사로 하는 기성 정치인이 된 것일까. 이 정도면 일단 자신의 오래된 화두인 ‘새 정치’는 버린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중도보수 대통합 정당
4월 총선을 앞두고 1월 2일 안철수 대표는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2018년 6월 바른미래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 패배하고 해외로 떠난 뒤 1년 반 만이었다. 그해 1월 3일 유승민 전 대표를 비롯한 바른정당계 8명이 탈당해 바른미래당 의석은 20석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2016년 4월 총선 때 37석을 확보한 국민의당이 민주평화당과 1차 분화를 거쳐 2차 분화까지 한 결과다. 계속 뺄셈 정치만 해왔던 것이다. 그래도 20석이면 원내교섭단체다. 여당과 제1야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행사도 가능하다. 잘하면 총선 국면에서 제1야당과 통합 또는 선거 연대를 이뤄 판을 뒤흔들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구사했던 것과 같은 ‘3당 합당’ 시나리오까지 제기됐지만, 안 대표는 독자노선을 선호했다. 결국 안철수 신당, 곧 지금의 국민의당을 창당해 총선에 임했지만 비례대표 3석 확보에 그쳤다.
정계 복귀 당시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랬을 것이다. 당을 재건해 4월 총선에서 2016년 국민의당이 이룬 37석 이상 확보를 추진한다. 이후 의석수가 쪼그라든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과 ‘당 대 당’ 합당 또는 흡수 통합을 추진한다. 중도보수 대통합 정당으로 차기 대선에 임해 집권한다. 그런데 국민의당이 소수 정당으로 전락하면서 대선의 꿈은 더 멀어졌고, 그에 따라 전략 수정의 필요성을 느꼈을 테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마땅한 길이 보이지 않던 차에 의외의 사건이 터졌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극단적 선택이다. 서울시장을 거쳐 대권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린 셈이다. 그런데 약한 당세가 문제로 떠올랐을 것이다. 4월 총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3당 합당’ 시나리오를 되돌아보게 됐을 테다. ‘3당 합당’ 시나리오는 2017년 11월 바른정당과 통합 논의가 무르익어갈 무렵 한 차례 돈 적이 있다. 바른정당과 1차 통합을 성사시킨 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2차 통합까지 이룸으로써 새로운 중도보수 대통합 정당을 만들어내는 시나리오다. 만약 그때 ‘3당 합당’이 이뤄졌다면 안 대표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총선 때 ‘3당 합당’이 이뤄졌더라면 안 대표는 지금쯤 중도보수 대통합 정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국민의힘과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5월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선 이후 안 대표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김 위원장에게 만남을 청했다는 것은 정치권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이전에는 일단 차기 대권주자로 가기 위한 디딤돌로 국민의힘과 통합을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한 가지 선택지가 더 생긴 셈이다. 이후 안 대표는 국민의힘과 통합 또는 연대를 성사시킨 뒤 추대 형식으로 서울시장 후보가 되는 시나리오를 급히 기획한 듯하다. 이 국면에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윤 총장이 범야권 유력 대권주자로 급부상하지 않았다면 안 대표는 곧바로 대선으로 가는 시나리오를 고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뜨는 상황에서 범야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은 바닥을 면치 못했고, 안 대표도 마찬가지 처지였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서울시장을 거쳐 대권으로 가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었을 것이다.
범야권 공동 경선 제안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른 인물은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다. 10월 김종인 위원장이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만나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했지만 김 대표가 거절했다는 설이 돈 이후 국민의힘 내에서는 한때 ‘유승민 차출설’이 나돌았다. 김 대표 같은 외부 인사를 영입하지 않더라도 당내 인사 가운데 유 전 대표 정도면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반영한 주장이다. 하지만 유 전 대표는 11월 1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서울시장 출마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대선으로 직행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김종인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에게 관심을 표명하는가 하면, 김근식 경남대 교수에게 서울시장 출마 제안까지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또한 안 대표로 하여금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결심을 앞당기게 한 변수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한때 안철수 사람이었다. 자칫 저들에게 서울시장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조급증이 발동하지 않았을까 한다.
마음은 급한데 김종인 위원장이 다른 인물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자 안 대표로서는 자극요법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번 서울시장 출마 선언 더하기 범야권 공동 경선 제안이었다고 본다. 충격요법이 먹힐까.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9월 안 대표 서울시장 차출설이 당내에서 불거졌을 때 김종인 위원장은 ‘동아일보’와 취임 100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선을 그었다. “2011년 민주당이 어물어물하다 외부 인사에게 시장 후보를 뺏겼다. 그런 우둔한 짓을 통합당은 절대 안 한다.” 11월 안 대표가 새로운 혁신 플랫폼으로 신당 창당을 제안했을 때도 김 위원장은 선을 그었다. “우리 당이 한 정치인이 밖에서 무슨 소리를 한다고 거기에 휩쓸릴 정당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얘기한다. 일부 의원이 안철수 대표 얘기에 동조하느냐, 안 하느냐 그건 관심이 없다.” 안 대표의 이번 출마 선언 직후에도 이런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결심한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수도 없이 많다. 우리 당에도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5명이나 되는데, 안 대표도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는 사람 중 1명이라고 생각한다.”
김종인 위원장은 일단 안 대표의 정치력에 대해 회의적이다. 9월 24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정치적 역량은 내가 평가를 안 해도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알 것이다. 정치적 역량이라는 게 솔직히 그분한테 처음에 ‘정치를 하고 싶으면 국회부터 들어가 제대로 배워서 정치를 해야겠다’고 했더니, ‘국회의원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인데 왜 국회의원을 하라고 하느냐’고 해 ‘이 양반이 정치를 제대로 아느냐’는 생각을 하고 자리를 떴다. 그 정도로 그분의 정치적인 생각에 대해 그가 어떻게 하고 있느냐를 내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기본도 안 돼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하고 싶다면 국민의힘에 입당해 하라는 것이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같은 자리에서 이런 언급도 내놨다. “시장 후보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국민의힘에 들어와 경쟁하면 된다.” 앞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이렇게 언급했다. “밖에 계신 분들이 관심이 있으면 우리 당에 흡수돼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것으로 생각한다.” 서울시장이건, 대통령이건 밖에서 군불 때면서 지분을 요구하지 말고, 입당해 계급장 떼고 경선에서 붙으라는 이야기다.
이런 김 위원장의 생각을 의식해 안 대표가 이번에 제안한 것이 바로 공동 경선이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겠다. 공정한 경쟁만 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든 좋다. 열린 마음으로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보겠다.” 입당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여지를 남기는 발언을 내놨다. “정권교체가 가장 중요한 목표다.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야권이 힘을 합해야 하고, 야권 단일후보로 맞서 싸워야만 한다. 열린 마음으로 이길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국민의당에 입당해 경선을 치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왜 출마 선언과 동시에 국민의힘 입당을 선언하지 않았을까. 추대에 대한 미련이 남았기 때문일 테다. 이 정도 카드를 내밀면 김종인 위원장도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 빈손으로 자신을 맞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한 듯하다. 이 부분은 김 위원장으로서도 고민이 없지 않을 것이다. 당내 구(舊) 친이(친이명박)계, 구 바른정당계를 중심으로 안 대표와 통합을 주장하는 이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당장 주호영 원내대표부터 적극적이다.
안 대표의 제안이 성사될지 여부는 서울시장 후보로서 본선 경쟁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첫 여론조사 결과는 일단 긍정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12월 19~20일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조사 결과 안 대표는 17.4% 지지율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5%p. 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 당시 3위로 획득한 득표율 19.5%에 근접한 수치다. 당시 박원순 전 시장이 52.8%,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가 23.3%를 획득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내 서울시장 후보인 나경원 전 의원이 16.3%,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이 8.3%, 이혜훈 전 의원이 3.8%를 획득했다. 합치면 28.4%이다. 안 대표의 지지율을 오차범위 밖으로 압도한다. 이는 곧 범야권 공동 경선이 ‘순차 경선’으로 이뤄질 경우 안 대표가 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도 결국 지지율만 보태주고 고배를 마시는 결과가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공동 경선 가능성은 커져
그런 점에서 ‘동시 경선’으로 가야 그나마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이것을 김종인 위원장이나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들이 원할 리는 만무하다. 또 다른 대안은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합당해 통합 신당 내에서 경선을 하는 방법이다. 당세 차이가 워낙 커 이 또한 성사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다만 안 대표 지지율이 현재 수준 이상을 계속 유지한다면 적어도 국민의힘 후보를 낙선시킬 수는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당에 응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또 다른 대안은 아예 국민의힘에 입당해 경선에 임하는 것이다.
어떤 대안을 선택할지 여부는 결국 안 대표에게 달렸다. 하지만 어차피 ‘3당 합당’ 트랙에 접어든 바에는 좌고우면할 필요 없이 곧바로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것이 시간을 단축하는 길이 아닌가 한다. 그것이 늘 간만 보다 끝난다는 의미의 ‘간철수’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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