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우리 헌법상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자(54·사법연수원 21기)는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9시 44분경 서울 종로구의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어떻게 되돌려드릴 수 있을지 심사숙고하겠다”고도 했다.
2010년부터 10년 동안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으로 재직해온 김 후보자는 ‘헌법 제1조 2항’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 헌법에 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서 “공수처의 권한, 공수처가 행사하는 권한 역시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력”이라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는 헌재에 근무하면서 2017년 7월과 2019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제로 각각 논문을 썼다. 그는 해당 논문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헌재가 헌법 수호의 관점과 국민 신임의 관점에 입각해 판단한 것은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점에서 대의민주제 원리를 위반한 것이고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행위인지 아무런 논증이나 설명을 제공하지 않았는 바 이는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서울대 법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는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에 제출한 지원서에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은 길’을 언급하면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경제학을 전공하려고 했던 김 후보자는 고교 시절 문화재 수집 연구가 간송 전형필 선생의 아들인 교장 선생님의 영향으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지원했다. 대학 4학년 때 헌법 수업을 듣게 된 뒤 우연히 법학에 흥미를 느껴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서울대 법학대학원 석사과정 진학 1년 6개월 만에 최종 합격했다고 한다. 이후 김 후보자는 판사와 변호사, 헌법재판소 연구관 등 다양한 법조계 경험을 쌓았다.
법조계에선 김 후보자가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특별검사팀에 수사관으로 파견 간 것 외에 수사 경험이 없어 공수처장 역할에 적합한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특별한 인연이 없고, 정치적인 색채가 옅어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수처장에 적합하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 조폐공사 파업 유도 특검 당시 검사들과 민간 수사관들이 내분을 겪었을 때 김 후보자가 결단력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수처장은 당시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한 사건을 다룰 텐데 과단성을 보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헌재 내부에서는 대체로 김 후보자에 대해 ‘조용히 일하는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함께 일을 하더라도 서로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둬서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다”는 평도 있다. 한 법조인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며 “본인이 옳다고 판단한 것에 대한 고집이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를 잘 아는 지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소신이 강하다”면서 “윤석열 검찰총장도 개인적으로 아는데 김 후보자 고집이 윤 총장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의 사법연수원 동기 중 한 명은 “소신이 뚜렷하고 옳다는 길은 죽어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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