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참혹한 학대 끝에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 양의 사연이 공론화되며 학대 신고를 받고도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찰들에게도 비난의 눈초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 현직 경찰이 정인 양에게 대신 사과하며 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고충을 토로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직 경찰 A 씨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입직 9년 차 근무 중이다. 그중 2년을 의지와 상관없이 휴직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막둥이 둘이랑 나이 차도 많이 나고 내가 업어키워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 이 조직에 들어왔을 때 애들한테 유독 정이 많이 가더라”며 “3년 차에 처음 본서로 들어가 여청에서 근무를 하게 됐고 정말 많은 아이들을 만나며 도움도 주고 햄버거도 사주고 내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들이었다”고 밝혔다.
사명감을 갖고 근무하던 A 씨의 순간은 단 한 건의 아동학대 신고로 산산조각 났다. 그는 “지구대에서 서류를 넘겨받고 부모와 아이 모두 만나 확인을 했다. 명백히 내가 봤을 때는 학대가 맞았고 여러 도움을 받아 부모와 아이를 분리시켰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A 씨의 발목을 잡았다.
A 씨는 “온갖 쏟아지는 민원, 매일같이 사무실에 찾아오는 가해 부모들과 주변인들,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에 (아이와) 분리할 때 내가 밀치면서 폭행했다고 독직폭행 등 온갖 죄목으로 고소 당했다”며 “그때 나를 감싸주는 윗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처리 잘못해서 X된 놈이라는 인식이 순식간에 퍼졌다”고 분노했다.
이어 “얼마 후 직위해제를 당했다.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으로 노력했는데 왜 집에서 쉬어야 하는지 몰랐고, 하루하루 죽고 싶었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2년간의 재판을 끝으로 A 씨는 선고유예를 받았다. 그러나 내부 징계와 정직 3개월이 더해지면서 도합 23개월을 쉬고 복직하게 됐다.
그는 “재판에서 검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사리분별이 힘든 영유아의 말과 학대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불분명한 피해 부위만으로 부모와 분리시킨 것은 직권남용이며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직무유기가 있다고 했다”며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게 아이가 학대받은 흔적이 있다면 분리 후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것인데 그렇게 했다가 인생 끝자락을 다녀온 것이 나다”며 현실을 꼬집었다.
A 씨는 “복직 전날 다시는 대민 상대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기동대에서 몸이 힘든 것이 낫지 정신까지 힘든 것은 버틸 수 없다”고 고백했다. 이어 “정인아 미안하다. 정인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을 또 다른 아이들아 정말 미안하다. 아저씨는 더 이상 용기가 안난다”고 정인 양에게 사과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A씨는 자신의 사례가 타 경찰서의 교육사례로도 나왔다고도 밝혔다. 아동과 보호자를 분리했을 때 보호자들의 민원과 더불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게 되는 것이 경찰 입장에선 부담이라는 것. 이에 법과 제도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인 양은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망 당시 배가 피로 가득 차 있었고 췌장은 완전히 절단돼 있었던 것으로 부검 결과 드러났다. 또한 양쪽 팔과 쇄골, 다리 등도 골절된 상태였다. 의료진은 정인 양의 몸에 있는 흔적들이 단순 사고가 아닌 아동 학대로 판단, 경찰에 신고했다. 양부모는 “단순 사고일 뿐”이라며 학대 사실을 부인했다. 경찰은 양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 양부를 학대 사실을 알고도 방관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두사람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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