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2500원도 비싸다[오늘과 내일/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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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가 생각하는 수신료 최대치는 1667.45원”
존재가치 증명해 공영방송 무용론부터 잠재워야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KBS가 월 수신료를 2500원에서 3840원으로 올려 달라고 한다. 수신료가 41년째 동결돼 공적 책무를 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왜 3800원도, 4000원도 아닌 3840원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동안 1인당 국민소득이 1729% 올랐고, 일본은 연간 수신료가 16만 원이 넘는다는 참고 자료를 냈다.

KBS 보는 데 얼마를 내면 적당할까. 시장 가격이 없는 공공재는 지불의사액(Willingness To Pay), 즉 지불할 의사가 있는 최대치를 따진다. 한국방송학회가 발간하는 저널에는 시청자들이 공영방송을 보기 위해 지불할 의사가 있는 최고 금액을 조사한 논문이 4편 있다. 김재철 박사의 2006년 조사에선 3775원이었다. 6년 후인 2012년 이준웅 서울대 교수팀의 연구에선 3577원, 2015년 우형진 한양대 교수의 조사에선 2645원, 우 교수팀이 2019년 다시 조사했을 땐 1667.45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미디어오늘과 리서치뷰가 2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도 수신료 인상 반대가 76%였다. 지난해 조사에선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46%나 됐다.

정치권에선 KBS가 편파 보도를 한다고 문제 삼지만 시청자들의 평가가 인색한 이유는 따로 있다. 2015년 조사까지만 해도 공정 보도 여부나 사회 통합에 기여한 정도를 따져 지불액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2019년 조사에선 소비자 후생을 기준으로 꼽았다. 설사 왜곡 보도를 해도 알아서 걸러 듣거나 다른 뉴스 채널을 볼 테니 내게 요긴한 정보, 날 즐겁게 해주는 콘텐츠를 달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게 안전에 관한 정보다. 재난 주관 방송사가 2019년 강원 고성 산불 때처럼 늑장 특보를 하면 2500원도 다 못 내겠다는 것이다. 이미 10명 중 6명은 스마트폰으로 재해 재난 정보를 얻고 있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강조하면서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하나 없는 방송, 수신료 중 고작 2.8%(70원)를 떼어가는 EBS가 펭수로 즐거움을 주는 동안 별 화젯거리도 못 만들어내는 재미없는 채널을 위해 왜 지갑을 열겠느냐는 것이다.

KBS로선 KBS를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KBS가 없어도 불편함을 못 느끼는 이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KBS 기자들이 파업을 해도 9시 뉴스 시청률이 20% 넘게 나오던 시절은 지났다. 종편과 홈쇼핑, 지상파계열 채널을 빼고도 유료채널이 130개가 넘는다. 젊은이들은 빠른 속도로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옮겨가고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방송을 ‘시장’이 아닌 ‘문화’로 여기는 유럽에서도 공영방송들은 공영방송 무용론에 맞서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영국 문화의 자존심인 BBC는 2027년 면허 갱신 때 수신료 폐지 문제를 결정할 전망이라고 한다. 스위스는 공영방송 민영화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했는데 결국 공영방송은 유지하되 수신료와 광고를 대폭 줄이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 일본 NHK는 수신료를 계속 내리고 구조조정 계획을 밝히며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KBS 수신료 인상안은 2007년부터 세 차례 국회에 제출됐지만 번번이 승인받지 못했다. 이번에도 여야 모두 시큰둥하다.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서인데, 그 여론이란 이런 것이다. 왜 다른 채널도 많은데 수신료 내가며 공영방송을 둬야 하나. 그것도 KBS1, KBS2, EBS 세 개씩이나. 공익을 위해 시장성 없는 프로도 만들어야 한다고? 1994년부터 수신료를 전기료에 합산해 강제 징수하면서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해줬는데도 별 성과가 없지 않았나. 시청자에게 수신료 내지 않을 권리를 줘야 KBS도 긴장하고 더 잘하지 않을까. KBS는 41년째 2500원은 너무하다고 억울해하지만 그것도 비싸다는 것이 여론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kbs#수신료#2500원#수신료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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