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시장에 계절을 타지 않는 ‘무계절성 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동아일보 유통팀이 이마트와 함께 계절 대표 상품을 선정한 뒤 코로나19 발생 전후인 2019년과 2020년의 월별 매출을 분석한 결과 소비에서 계절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종전에는 계절적 특성을 반영한 시즌 상품이 많았지만 코로나19 이후 일상생활이 크게 변하면서 소비자의 구매 패턴도 달라진 것이다.
○ 여름에 보온병 사고 한겨울에 등산
2019년만 해도 봄철에는 미세먼지 및 황사용 마스크와 신학기 특수인 문구류가 잘 팔렸다. 마스크는 1∼3월 매출이 전체의 69.2%를 차지했고 날씨가 더워질수록 매출이 하락해 6∼9월에는 1%대 미만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는 코로나 확산 위기감이 높아진 2월 판매가 가장 많았다. 이후 한여름까지도 10%대로 팔리며 사계절 필수품이 됐다. 문구류도 비슷했다. 2019년 노트, 필기구는 3월에 각각 23.6%, 19.1%로 연중 가장 많이 팔렸지만 지난해에는 재택근무와 원격수업 영향 등으로 봄철 매출이 반 토막 났다.
여름 음식으로 알려진 장어와 포도는 연중 인기였다. 장어는 2019년엔 여름철(6∼8월)에 매출의 45.1%가 집중됐지만 지난해엔 2, 3월 판매가 전년보다 두 배 이상으로 뛰며 계절 간 편차가 줄었다.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건강식품과 보양식이 사계절 인기를 끌어서다. 포도는 여름 매출 비중이 35.7%에 달했던 여름 과일. 2019년 12월 매출은 7.3%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12월에도 11.2%로 매출 비중이 높아졌다. 외식이 줄어든 대신 고급 디저트 수요가 늘면서 생긴 변화다.
가을, 겨울 대표 상품도 실종됐다. 등산용품은 가을이 성수기였지만 지난해엔 가을(9∼11월) 매출이 35%에서 26.2%로 뚝 떨어졌다. 인파가 몰릴 우려가 있었던 가을철 산행을 오히려 피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11, 12월엔 28.4%로 연중 가장 매출이 높았다. 12월 초 수도권 헬스장 영업이 중지되면서 산으로 몰린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 코로나 기점 급변한 생활상 반영
보온병은 겨울 아이템이지만 지난해엔 여름에 잘 팔렸다. 여름(6∼8월) 매출이 전체의 28.4%로 전년 동기 20.1%보다 높았다. 코로나로 개인위생이 강화됐고 1, 2인 캠핑족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무계절성 소비’는 의식주 전반에서도 나타난다. GS리테일의 2019년 얼음 판매는 하절기, 동절기에 각각 94%, 6%로 차이가 극명했지만 지난해는 67.5%, 32.5%로 편차가 줄었다. ‘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커피) 트렌드에 ‘홈술’ ‘홈바’ 인기가 맞물린 영향이다.
계절별 상품 구분이 옅어지는 것은 의류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원아웃도어는 “가을겨울 상품인 플리스가 봄에 잘 팔렸고 겨울에는 반팔 티셔츠의 판매 비중이 늘고 있다”고 했다. 한섬에서도 반팔 의류 판매가 전년보다 30% 신장했다. 실내 활동이 증가한 데다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무계절성 소비는 코로나로 한국인의 생활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며 “코로나 이후에도 이런 소비경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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