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후 3년 지나면 차등의결권 소멸?… 벤처 육성 취지 무색”[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2일 03시 00분


차등의결권 입법안 논란

사진: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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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기 서울대 경영대 교수
이동기 서울대 경영대 교수
최근 국내 1위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의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추진 소식이 화제다. 쿠팡이 국내가 아닌 미 증시에 상장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관심을 끈다. 또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일반 보통주 의결권의 29배 의결권을 가지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부여받는 구조로 미국에서 기업공개(IPO)가 이루어진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 제도 때문에 쿠팡이 미 증시 상장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국회에서도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기 위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육성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 ‘차등의결권’, 쿠팡의 미국행에 영향


쿠팡은 법적으로 지분 100%를 가진 쿠팡 INC(쿠팡 LLC에서 변경)라는 본사를 미국에 두고 있다. 그동안 쿠팡의 투자유치는 쿠팡 LLC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쿠팡 INC의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전체의 약 37∼38% 지분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이사회 의장의 쿠팡 INC 지분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프트뱅크보다는 낮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낮은 지분에도 차등의결권 제도를 활용하여 경영권은 확보하고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쿠팡은 설립 초기부터 글로벌 투자유치와 미국시장 IPO를 목표로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미국에 법적 본사를 설립했고,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때 이미 차등의결권 구조를 도입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쿠팡의 미 증시 상장 추진은 오래전에 내려진 결정이다. 다만 이런 결정에 미 자본시장의 차등의결권 제도에 대한 유연성 등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쿠팡의 미국 상장 추진에 큰 변수가 된 차등의결권 주식은 뭘까. 차등의결권 주식 제도란 ‘1주 1의결권(One share, One vote)’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 1주당 의결권이 상이한 두 종류 이상의 주식을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복수의결권주, 부분의결권주, 무의결권주, 거부권주 등이 있다. 주식 보유기간이나 보유 주식 수에 따라 의결권수에 차등을 두는 경우도 포함된다. 복수의결권주는 주로 기업의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발행된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미국과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제도였다. 미국의 구글(현재 알파벳)이 2004년 기업공개 당시 도입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당시 구글은 창업가팀이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전략을 추진하는 데는 차등의결권 제도가 필수적임을 밝히고 클래스 A주식의 10배 의결권을 가지는 클래스 B주식을 발행했다. 이를 창업자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밋이 나눠서 보유했다. 이 제도를 통해 구글은 기업공개 이후 경영권 상실 위협 없이 대규모 자본조달을 통해 고성장을 추구할 수 있었다. 상장 후 발행한 클래스 C주(의결권이 없는 주식)와 클래스 A주의 최근 주가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2014년 중국의 알리바바가 차등의결권 제도를 허용하지 않는 홍콩 증권거래소를 포기하고 뉴욕 증권거래소로 옮겨 상장한 이후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차등의결권 관련 제도의 논의가 활발해졌다.

○ 미 3000개 기업 중 221개 도입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17개국에서 차등의결권 제도가 허용되고 있다. 2017년 기준 미 러셀3000지수에 포함된 3000개 미국기업들 중 221개가 차등의결권 구조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들이 상장할 때 차등의결권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도입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제도의 구체적 구조는 기업별로 매우 다양하다.

프랑스도 2014년 플로랑주법(Florange Law) 통과로 2년 이상 보유한 모든 상장 주식에 대해 2배의 의결권을 자동적으로 부여하는 ‘테뉴어 보팅(Tenure Voting)’ 제도를 도입했다. 알리바바의 뉴욕증시 상장 이후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고민하던 홍콩과 싱가포르도 결국 2018년 차등의결권주식 발행기업의 상장을 허용하게 됐다.

반면 한국은 상법에서 의결권의 배제, 제한에 관한 종류 주식을 발행 주식 총수의 4분의 1까지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매우 제한적인 규정이다. 복수의결권주 등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이는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가 강했던 우리나라의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나, 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복잡한 피라미드 지배구조가 나타나게 됐다.

최근 정부와 국회도 벤처 붐을 확산하고 비상장 벤처기업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위한 벤처기업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추진을 계기로 이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선 언급대로 차등의결권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창업자나 벤처기업 경영자가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해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경영권 상실 걱정 없이 적극적 성장전략을 추구할 수 있게 하고 단기 주가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경영자가 경영성과에 관계없이 경영권을 유지하거나 기업 간 M&A를 어렵게 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이 문제는 차등의결권 제도가 없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좀 더 심층적 분석이 필요하다.

차등의결권 주식제도 등을 통한 장기적 관점의 경영이 기업혁신과 주가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실증연구가 다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차등의결권 주식제도 도입과 기업가치의 관계에 대해 일치된 연구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즉, 차등의결권 주식제도를 장점만 있고 단점이 없는 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면 모든 기업의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이 제도를 도입하거나 금지하고 있지 않는 이유를 잘 살펴야 한다. 차등의결권 주식제도는 현실적으로 도입 필요성이 높은 기업들이 이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기업지배구조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비상장회사와 상장회사의 장점을 결합해 우수한 벤처들을 자본시장에 적극적으로 유입시키는 제도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도 많은 해외 사례들에서처럼 차등의결권 주식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해 기업가 정신이 왕성한 성공적 벤처기업들이 쿠팡처럼 본사를 해외에 두지 않고서도 적극적인 투자유치와 성장전략을 전개해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

○ ‘보유 지분 30% 미만이면 최대 10년 허용’ 추진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벤처기업육성특별법 개정안은 비상장벤처기업에 한해 주당 2∼10 의결권을 가지는 복수의결권주 발행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리고 대규모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보유지분이 30% 밑으로 떨어질 경우 최대 10년까지만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고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일반 보통주로 전환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벤처기업들이 활발하게 차등의결권 주식제도를 활용하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개별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의 내용들이 매우 다양하다. 현재의 벤처기업법 개정안처럼 ‘보유지분이 30% 밑으로’, ‘최대 10년까지만’,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일몰’ 등 지나치게 세부적인 조건까지 달아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제도의 실효성이 매우 낮아진다.

특히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일몰되는 조항은 차등의결권 주식제도 도입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킨다. 차등의결권 주식제도가 성장잠재력이 높은 벤처기업이 상장 후에도 경영권 우려 없이 활력 있는 성장 전략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상장 후 3년이 지나 차등의결권이 소멸된다면 이 제도의 효용성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일률적 일몰조항을 도입하기보다는 좀 더 유연한 구조 도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일몰기간 후에도 주주 과반수의 승인을 받으면 차등의결권 구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제안한다. 또한 발행주식의 4분의 3 이상 동의 등의 조항도 너무 까다로운 조건으로 보인다.

쿠팡과 소프트뱅크의 협력관계를 보면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면 벤처에 투자하는 대기업의 경영권 확보를 어렵게 해 벤처기업과 대기업 간 상생구조 구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제도를 부작용 ‘가능성’만을 강조해 지나치게 엄격하게 만들거나 획일적 잣대를 경직적으로 적용하면 결국 그 제도는 실패하게 된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 점이 깊이 고려됐으면 한다. 제도의 남용이 걱정된다면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 기업에 대해서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그중에서도 특히 지배구조 평가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무능한 경영자가 차등의결권 제도를 남용하거나 악용할 경우 투자자들은 결국 그 기업을 떠나게 되는 시장 메커니즘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차등의결권::
1주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해 대규모 투자 유치 이후에도 창업자가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경영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제도. 복수의결권이라고도 한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대 교수


#차등의결권#입법안#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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