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3일 국회 기재위에서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빅브러더 법’이라며 재차 비판했다. 한은은 17일 입장 자료에서 개정안을 금융위의 빅브러더 법이라며 비판했는데, 이틀 뒤 금융위가 지나친 과장이라고 반박하자 이 총재가 국회에서 다시 반박에 나선 것이다. 한은 총재가 정부 여당 입법을 권력의 국민 감시에 빗대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법 개정안은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내부에서 이뤄지는 개인 거래 내용을 금융위가 수집,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위는 금융 사고 때 고객 보상을 하려면 불가피한 조치라고 한다. 반면 금융위가 제한 없이 개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중앙은행 고유 업무인 지급결제권을 침범한다는 게 한은 입장이다.
한은과 금융위가 영역 다툼을 하는 형국이지만 법안이 국민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사생활 보호 관점에서 이 사안을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자금융거래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소비자 보호 장치는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빌미로 국민의 개인 정보를 손쉽게 통제하려 한다면 부작용이 더 크다.
이미 한국 사회에는 ‘빅브러더’를 허용하는 제도나 관행들이 너무 많다. 대도시에서 집을 한 채 사려면 예금과 소득 등 개인 정보가 담긴 서류들을 내야 한다. 정부는 부동산거래분석원을 만들어 개인 금융 정보를 뒤져볼 계좌추적권까지 주겠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피의자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강제로 해제하는 법까지 거론됐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민들은 일거수일투족이 방역당국에 노출되는 수준의 개인 정보 수집을 감내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수많은 개인 정보가 디지털 공간에 기록되고 있다. 이런 정보를 한곳에 모아 놓는 것만으로도 빅브러더 위험을 높이게 된다. 개인 정보를 보호하도록 규정을 강화해도 부족할 판에 정부가 나서서 개인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한은이 빅브러더를 거론하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화가 난다”고 했다. 개인의 자유, 사생활 보호와 관련된 법안을 놓고 힘센 기관들이 감정 다툼을 벌이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이번 개정안이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금융거래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충분한 토론과 검토를 거친 후 개인 정보 침해 우려가 없도록 입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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