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라쿼크’ 첫 발견… 국내 반도체기술도 한몫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2일 03시 00분


‘신의 입자’ 힉스 규명한 거대강입자가속기 본격 가동 10주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설치된 앨리스 검출기에는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탑재됐다. 씨온테크는 
반도체 칩 5만 개를 자동으로 검사하는 장비를 만들어 앨리스의 내부궤적검출기(ITS) 제작에 기여했다. 사진은 ITS 조립 장면.
 연세대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설치된 앨리스 검출기에는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탑재됐다. 씨온테크는 반도체 칩 5만 개를 자동으로 검사하는 장비를 만들어 앨리스의 내부궤적검출기(ITS) 제작에 기여했다. 사진은 ITS 조립 장면. 연세대 제공
현대물리학의 산실로 불리는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2010년 3월 거대강입자가속기(LHC)의 본격 가동에 들어간 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CERN의 과학자들은 지난 10년간 지하 100m에 설치한 27km 길이의 거대한 터널 속 장치에서 빛의 속도로 달려간 양성자(수소이온)들을 정면충돌시켜 137억 년 전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 직후를 재현해왔다. 그 과정에서 만물에 질량을 부여해 ‘신(神)의 입자’로 불렸지만 실체를 규명하지 못하던 ‘힉스’ 입자를 비롯해 59개에 이르는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다. 우주의 비밀을 푸는 데 한국 연구진과 기술력도 힘을 보탰다.

○쿼크 4개 ‘테트라쿼크’ 수십 년 만에 첫 발견

그간 CERN의 성과 중에서 최근 확인한 의미 있는 발견은 ‘테트라쿼크’(쿼크 4개로 이뤄진 입자)다. CERN은 최근 홈페이지에서 “이론적으로만 예측되던 ‘테트라쿼크’의 존재를 수십 년 만에 처음 확인했다”고 밝혔다.

윤진희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는 “2012년 힉스가 발견되면서 표준모형을 구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은 채워졌지만 이들을 묶는 힘에 대해 여전히 모르는 점이 많다”며 “LHC에서는 지금도 쿼크 사이의 강한 상호작용 같은 표준모형의 남은 의문을 풀기 위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고, 테트라쿼크도 이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표준모형은 쿼크 6개와 렙톤 6개, 이들을 매개하는 입자 4개 등 16개의 기본입자와 이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까지 총 17개의 입자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한다.

1968년 쿼크가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발견된 입자들은 쿼크 2개나 3개로 이뤄진 것들뿐이었다. 가령 양성자는 쿼크 3개로 구성된 입자(바리온)다. 양운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테트라쿼크의 존재는 이론적으로도 논란이 있었는데 이번에 존재가 처음 확인됐다”고 말했다.

테트라쿼크 발견으로 물리학자들의 숙제는 더 늘어났다. 윤 교수는 “중력이나 전자기력은 입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힘이 약해지는데 쿼크 사이에 작용하는 강한 상호작용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힘이 더 커진다”며 “테트라쿼크뿐 아니라 쿼크 5개로 이뤄진 펜타쿼크 같은 입자에서 강한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중소기업의 반도체 기술로 입자 검출

LHC를 이용한 새 입자 발견에서 한국 연구진의 역할도 컸다. 윤 교수는 LHC의 4개 검출기 중 하나인 대형이온충돌기(ALICE·앨리스) 실험에 참여하는 22명의 한국팀 대표로, 양 교수는 뮤온 압축 솔레노이드(CMS) 실험을 진행하는 130명의 한국팀 대표로 2016년부터 CERN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력도 빛을 발했다. 앨리스 검출기 가장 안쪽에는 양성자나 납 이온을 충돌시켜 찰나에 생성되는 수많은 입자를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듯 입자 궤적을 촬영하는 내부궤적검출기(ITS)가 달려 있다. 검출기에 들어가는 카메라 역할을 하는 반도체 칩만 5만 개에 이른다. CERN은 이렇게 많은 반도체 칩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어 국내 중소기업인 씨온테크에 의뢰해 자동으로 검사하는 장비를 제작했다.

윤 교수는 “CERN은 처음에는 기존 납품업체인 네덜란드 기업에만 제작을 맡기려고 했다”며 “하지만 씨온테크가 네덜란드 장비보다 2배 이상 좋은 성능으로 검사를 완료하자 지난해 11월 우수 협력 기업에 주는 ‘산업체상’까지 줬다”고 말했다.

CMS에서 빠르게 다른 입자로 붕괴하는 기본입자인 뮤온을 찾는 젬(GEM) 검출기는 국내 중소기업인 메카로가 제작한 반도체검출기가 대형 포일처럼 감싸고 있다. 이 검출기 표면에는 지름 7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로 머리카락 한 올 굵기의 미세한 구멍이 촘촘히 뚫려 있다. 이 구멍 사이로 자기장이 흘러 뮤온 입자를 재빨리 잡아낸다. 양 교수는 “대형 포일 세 겹이 검출기를 감싸 10억분의 1초 만에 사라지는 뮤온 입자를 포착한다”고 말했다.

검출기 성능을 높이기 위해 2년간 셧다운됐던 LHC는 당초 올해 가동을 재개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내년 2월로 재가동 시점을 늦췄다. 양 교수는 “내년에 LHC가 실험을 다시 시작하면 우주의 27%를 구성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의 후보 입자와 중성미자 같은 새 입자를 찾는 게 목표”라며 “2013년 노벨상을 가져왔던 힉스 입자에 버금가는 발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테트라쿼크#반도체기술#신의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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