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책을 만들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날씨는 추웠고 해는 짧았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만날 수 없었다. 이런 때일수록 사소한 일상을 돌보는 사유와 기록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어느 책방의 제안으로 일반인들의 글을 모아 에세이집을 만들기로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서른아홉 명의 글을 메일로 받았다. 밥을 차려 먹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기차를 타고, 편지를 쓰고, 전화 통화를 하고, 산책하는 시간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의외로 가장 일상적인 시간이었다. 모두에게 감상이 담긴 답장을 보내며 기분이 좀 이상했다. 만나본 적 없고 얼굴조차 모르는데 우리는 어떻게 이토록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걸까. 우리는 어떤 사이인 걸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보내온 글도 있었다. 우연히 그곳에 정착하게 된 글쓴이는 재작년 모스크바 12월 일조량이 6분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한 달 동안 겨우 6분만 해가 난 것이다. 궂은 하늘과 눈 덮인 땅이 전부인 모스크바의 겨울에 갇혀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해가 났다. 슈퍼마켓 반짝 세일 같은 햇볕이 쏟아졌다. 그러자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모두가 볕을 쬐며 산책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후로 글쓴이는 산책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일조량’이라는 딱딱한 단어가 아주 귀하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매일 산책을 나섰다. 유난히 춥고 고립된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해도, 6분의 일조량 정도는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일상을 꾸리고 싶었다. 볕을 쬐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조금씩 움트는 싹처럼 마음이 기지개를 켰다. 모스크바로부터 연결된 행복이었다.
코로나로 봉쇄된 우한에서 어느 활동가가 낯선 사람들과 소통하며 기록한 책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극히 수동적인 상황에 처해 있을 때도, 사람들은 여전히 주체적인 삶을 찾아 나선다.”
겨우내 만든 책을 봄에 받아 들었다. 봄볕을 쬐며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만나본 적 없지만 글로 짐작하는 사람의 인상, 사람의 말투,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사람들과 사귀었다. 집에서 밥을 차려 먹고, 병원에서 책을 읽고, 대전에서 일기를 쓰고,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영국 런던에서 편지를 보내고, 인도에서 전화를 걸고, 모스크바에서 산책하던 사람들. 극히 수동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수다를 떨었다. 기록을 남겼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우리는, 낯선 사람들이 아니었다.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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