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처럼 차고에서 회사 일으키고… 4년 만 첫 계약 결실 몸 불편한 친구를 돕겠다며 키워온 ‘작은 꿈’ 의료용 로봇 개발
“차고에서 창업한다는 사람들 얘기는 언론에서나 봤었는데…. 정말 방법이 없더라고요.”
미국 텍사스주의 의료재활용 로봇 개발업체 로볼리전트(Roboligent) 김봉수 대표는 10년 전 미국으로 건너와, 그로부터 5년 만에 창업의 꿈을 이뤘다. 그런데 그에게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로봇을 만들겠다는 의지만 있었을 뿐, 미처 사무실을 마련할 돈조차 없었다. 마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처럼 월세 1500달러짜리 자택 차고에서 회사를 일으킨 그는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던 지난해에 감격의 첫 계약을 맺었다. 창업한지 4년 만의 결실이었다.
김 대표를 지난달 줌 화면으로 만났다. 화면 뒤로 비친 그의 사무실은 매우 작은 크기에 짐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모습이었다. 물리적인 공간만 달라졌을 뿐 비좁고 어지럽기는 5년 전 차고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김 대표는 “직원이 5명까지 늘었다”며 “조만간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라며 웃었다.
김 대표는 한국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대덕연구단지의 전력연구원에서 5년 여 동안 연구원 생활을 하며 로봇을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키웠다. 그런 와중에 한 친구가 몸이 불편해지면서 재활하는 방법을 애타게 찾게 되자, 로봇을 향한 그의 꿈은 더 커졌다.
텍사스 오스틴대학으로 유학하게 된 것은 2011년 가을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5년 동안 재활로봇에 대한 연구에 참여했다. 그런 도중에 창업의 기회가 왔다. 대학 내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에 들어가 로봇 연구를 하던 도중, 행사 등을 통해 연구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고 의사들의 관심이 커져 상용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하지만 같이 창업을 하려던 교수나 투자자들과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고민에 빠졌다. 당시는 유학을 위해 저축한 돈이 바닥나고 가정에 아이도 생긴 상태라서 모험을 걸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김 대표는 “혹시나 따로 창업했다가 실패하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서 오랫동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독립 창업이라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길을 택했다. 차고에서라도 내 사업을 시작한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고, 다행히 가족들도 창업을 도와줬다. 미국의 국립과학재단에서 첨단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SBIR 프로그램에 선정돼 자금 지원도 받은 것도 결정적이었다. 김 대표는 “창업한 지 몇 년 동안은 이렇다할 회사 수익이 없이 기술개발에만 매진했다”면서 “로봇 중에서도 특이한 로봇을 개발하다보니 그 기간이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고된 시절의 성과가 찾아온 건 2019년 말. 회사가 개발한 의료재활용로봇에 대한 광고를 구글에 올린 지 이틀 만에 싱가포르 회사에서 관심을 보였다. 당시 김 대표의 기업은 신생기업이었지만, 실제로 사람의 근육처럼 작동하는 ‘힘 제어’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은 몇 군데 되지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작년 8월 이 회사와 납품 계약에 성공했고,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돕겠다면서 키워왔던 ‘작은 꿈’을 이루는 데 어느 정도는 다가서게 됐다. 김 대표는 “젊었을 때 연구소를 다니면서 소비자를 위한 제품 개발을 끝까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싱가포르 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우리의 재활용로봇을 쓰이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다음 패러다임 변화는 글로벌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카카오 창립 멤버들 VR 콘서트로 美 팝 시장 노크…팬데믹의 수혜로 사업 확장
“그래도 미국에 시장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리고 우리도 각자 창업을 몇 번씩 해봤던 사람들이었고요. 힘들 때마다 서로 의지해가며 버텼어요.”
어메이즈VR(AmazeVR)의 이승준 대표의 말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창업을 한 이후 조바심이나, 고비가 없었느냐는 질문을 하자 “그럼요, 저희도 사람인지라…” 하면서도, 웹캠 앞에서 눈빛에 힘을 잃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은 매출이 줄고 심지어 부도가 나는 무서운 팬데믹 상황 속에서 어메이즈VR은 ‘비대면 트렌드’의 수혜를 받으며 오히려 기업이 성장 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회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웨스트 할리우드에 본사가 있지만, 그는 화상 인터뷰 당시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회사의 사업 영역을 넓혀 한국 지사를 확장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관련 업계 분들을 만나 팀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메이즈VR은 카카오 초기 멤버들이 2015년에 창업한 회사다. 가상현실(VR) 기술을 기반으로 해서 음악 아티스트의 VR 콘서트를 제작해 이를 온·오프라인으로 유통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관객들은 움직이는 모션체어가 있는 4D 영화관에서 특수 제작된 헤드셋을 끼고 콘서트를 관람한다. 가수가 마치 자기 10m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갑자기 날아올라 어디론가 함께 가기도 한다. VR 극장이 없는 곳이라면 집에서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가수들의 대형 라이브 콘서트가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만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지난해 7월 미국 유명 레코드사인 락네이션(Roc Nation)의 세라디(Ceraadi)와 첫번째 프로젝트 촬영을 마쳤다. 또 미국 내 톱클래스 아티스트들을 접촉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전미 투어를 돌 수 있는 수준의 아티스트와 프로젝트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 대표는 “기존의 라이브콘서트는 아티스트가 계속 해서 바쁜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VR 콘서트는 하루만 틈을 내 제작하면 사실상 그 아티스트가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며 “콘서트는 큰 나라, 큰 도시만 가지만, 우리는 온라인으로 작은 도시들도 모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어메이즈VR의 꿈은 아티스트가 앨범을 만들 때마다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처럼, VR콘서트 콘텐츠도 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2015년 어메이즈VR을 창업한 이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산업공학과 생명과학을 전공한 뒤 소프트엔지니어 생활을 거쳐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 합류했다. 이후 카카오 초기 멤버로 전략지원팀장 등을 거쳤다.
그는 항상 “다음의 시대 패러다임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창업을 준비했다. 또 “VR이 TV나 모니터를 대체할 것이고, 이런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서는 사업을 미국에서 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 뜻이 맞는 멤버들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미국이 가장 큰 시장이고 미국에서 성공하면 중남미와 캐나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영어도 완벽하지 않고 정착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아직 가상현실의 대중화가 덜 돼서 실제로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의 시간이 지난 뒤 어메이즈VR은 2019년에 950만 달러 규모의 첫 투자를 받았다. 이후에는 이 대표도 놀랄 정도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졌다. 팬데믹으로 사람들 간의 접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VR 산업이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최근에도 950만 달러를 추가로 유치해 누적 투자금액은 1900만 달러가 됐다. 이 대표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회사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2, 3년가량 앞서간 측면이 있다”며 “추가 투자와 사업 확장을 급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분명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미국 아티스트 위주로 생각하고 있지만 나중엔 케이팝 쪽으로도 확장할 생각”이라며 “어메이즈VR도 언젠가는 쿠팡처럼 증시에 상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창업은 내 얘기라 생각 안 해봤던 평범한 유학생 작고 오래가는 배터리 기술 개발로 투자 유치 성공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본사가 있는 ‘밀리뱃(Millibatt)’은 소형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작고 파워 있는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다. 2015년 12월 설립됐고 지금까지 총 400만 달러가 넘는 투자를 받아 배터리 제조를 위한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 회사 허인영 대표(37)는 창업에는 전혀 생각이 없었던 평범한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그는 지난해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 행사 및 최근 본보 화상 인터뷰를 통해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앞으로의 각오 등을 밝혔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미국 UCLA로 건너가 연료전지와 배터리를 연구해 왔다. 그러던 중 3D 마이크로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게 돼 특허를 낼 수 있었다. 당시 대학 측 지식재산권(IP) 담당 직원이 “창업을 할 것이냐”고 물었지만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 대표는 “창업은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이고 그저 연구소나 반도체 회사에 취업할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직원의 말이 뇌리를 계속 떠나지 않았고 결국 2015년 12월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고 한다.
이어 회사 기술을 홍보하고 투자를 받는 과정이 이어졌다.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에 도전장을 낸 것은 2017년 초였다. 서류와 인터뷰를 거쳐 프로그램에 선발된 허 대표는 마지막 데모데이에서 500여 명의 투자자들 앞에 올랐다. 그 기회를 통해 목표 금액보다 많은 투자를 받았고, 그 돈으로 기존 배터리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하이파워 배터리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UCLA 인큐베이터에서 독립한 것은 2019년. 팬데믹이 터진 작년 초에는 200만 달러의 추가 투자를 받았고 이는 빠르게 2세대 배터리를 개발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대학에서 학위과정을 하며 연구를 한 시간은 창업에 약이 됐다. 허 대표는 “박사과정 동안 수년에 걸쳐서 실험과 실패, 또 다른 실험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오랜 기술개발의 과정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오히려 재미가 붙었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자 시절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던 습관은 모든 결정을 빨리 내리고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사업가의 모습으로는 맞지 않아 고생을 하기도 했다. 허 대표는 “창업 과정에서 남편의 지지가 있었고 지금도 후회 없이 잘 헤쳐 나가고 있다”며 “앞으로는 우리 기업은 제조 공정을 라이센싱하는 기술개발 회사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직접 배터리를 제조해 납품하는 부품업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존 경제질서를 모두 뒤바꾼 팬데믹…혁신 경쟁은 오히려 더 치열
이 세 곳의 한국인 스타트업은 미국에서 창업을 한지 5년 안팎이 지났고, 고된 사업화 과정을 거쳐 이제 어느 정도 수익의 결실을 앞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높은 기술력을 앞세워 사업 초기부터 벤처캐피털이나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은 게 시련을 견뎌나가는 큰 힘이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창업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내 스타트업들 간에 인재유치 경쟁은 상당히 치열하고 채용에 성공해도 로열티가 낮아 쉽게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잦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경우 회사운영비와 생활비가 많이 들어 최근에는 텍사스주 등 비용이 적게 드는 곳으로 옮겨가는 기업들이 많다.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 측은 “높은 인건비와 과다한 회사 운영비를 고려하면 충분한 펀딩을 확보한 스타트업만이 지속적인 기업 활동이 가능하다”며 “많은 기업이 한국에 엔지니어팀을 구성해 협업하는 방식을 택해왔지만 요즘 한국의 개발자 임금도 상승하면서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팬데믹으로 기업 환경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했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스마트워크 시스템이 속속 도입됐다. 불확실한 경제 전망 때문에 신규 투자나 계약을 미루는 분위기가 있어서 일부 기업들은 자금난을 겪기도 한다.
물론 이런 환경이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신산업 부문이 확장되고 이를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실리콘밸리무역관은 한국인 스타트업의 사업 단계별로 개별 멘토링 제공, 입점 상담 및 교육, 시장조사와 컨설팅, 피칭 대회 지원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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