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야구를 시작한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프로 선수가 되는 것, 유명한 선수가 되어 큰돈을 버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돕는 것.
무엇보다 그는 야구가 좋았다. 포지션은 다른 아이들이 꺼리는 포수였다. 힘든 자리였지만 힘들지 않았다. 무조건 열심히 했다. 열심히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었다.
황금 같은 순간도 있었다. 2010년 열린 제60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일고는 결승전에서 장충고를 1-0으로 꺾고 우승했다.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는 광주일고의 마지막 공을 받은 우승 포수였다. 그 경기 유일한 득점의 주인공도 역시 그였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열심히’보다는 ‘잘’해야 했다. 그는 “열심히 한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고 대학을 갔다. 대학 졸업 후에도 역시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고향 팀 KIA에서 2017년 그에게 불펜포수 직을 제안했다. 경기 전이나 훈련 때 투수들의 공을 받아주는 훈련 보조요원 자리였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였던 그는 그마저도 좋았다. 투수들의 공을 받을 때는 힘차게 “오케이”라고 외쳤다. 그가 공을 받았던 투수가 경기에서 잘 던지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특유의 파이팅으로 힘을 북돋워주는 그를 모든 투수들이 좋아했다. 올해 미국으로 떠난 왼손 에이스 양현종(텍사스)이 특히 그를 아꼈다.
프런트 직원들이 그를 정의하는 한마디는 ‘솔선수범’이다. 가장 먼저 나와 장비를 준비하고, 가장 늦게 불펜을 정리한 뒤 자리를 떠났다. 궂은일은 도맡아서 했다. 그는 잘 웃었고, 언제나 밝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덮쳤던 작년엔 이런 일도 있었다. 미국 스프링캠프를 마친 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으로부터 받은 상금 30만 원을 한창 코로나19로 고통받던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 기부했다. 지난해 10월 다시 감독이 주는 ‘이달의 선수상’을 받은 그는 상금 25만 원에 자기 돈 25만 원을 보태 대한적십자사 전남지사에 50만 원을 기탁했다. 일단 기부를 시작하자 ‘100’이란 숫자가 어른거렸다. 그는 아껴서 모은 20만 원을 모교 광주일고 야구부에 기부하며 100만 원을 채웠다.
얼마 전 그는 친척이 하는 폐기물 사업을 돕기 위해 팀을 떠나기로 했다. 야구와의 이별은 아쉽지만 언제까지 이렇게만 살 순 없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구단도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오랜 기간 팀에 헌신한 그를 위해 작은 은퇴식을 열어줬다. 13일 롯데와의 안방경기에 앞서 열린 송별식에서 골든글러브와 기념 유니폼 등을 전달했다. 그는 시구자로 나선 아버지가 던져준 마지막 공을 받았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는 “야구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금 하는 일을 잘 배워보고 싶다. 사업으로 성공해 반드시 주변에 보답하겠다”고 했다. KIA는 올 시즌 전 그를 ‘육성선수’로 등록했다. 비록 한 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그는 엄연한 KBO 등록선수로 유니폼을 벗었다. 이름 없는 선수였던 그는 등번호 105번의 KIA 타이거즈 우투좌타 포수 이동건(2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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