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패턴 등 취향에 따라 선택… 아우터 없이 단독으로 연출 가능
'재킷 속 긴팔 셔츠' 원칙은 옛말… 오픈 칼라 컨버터블 스타일 주목
예전과 다르게 상당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4월이다. 벌써 가벼운 외투마저도 거추장스럽게 여겨진다. 기온의 변화를 종잡을 수 없는 계절. 아우터 없이도 패션 센스를 뽐낼 수 있는 아이템으로 셔츠를 소개해볼까 한다.
현대 패션에 있어 셔츠는 상당히 재미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셔츠는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등 고전적 방식의 직업 구분을 셔츠 색으로 할 만큼 오랫동안 누구나 입는 아이템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정작 아이템 자체로 주목받기보다는 재킷 안에 받쳐입는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것도 사실이다. 셔츠 입장에서 보면 그 장점과 활용도에 비해 상당히 억울한(?) 취급을 받아왔다고도 볼 수 있다. 심지어 오랫동안 ‘와이셔츠’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이름으로 불려왔다는 점에서 심심한 사과와 함께 이제라도 셔츠의 위상에 대한 재평가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먼저 와이셔츠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겠다. 티셔츠의 펼쳐진 모습이 알파벳 T를 닮아 티셔츠인 것처럼 슈트 차림에 받쳐입는 이 셔츠는 Y를 닮아 ‘Y셔츠’가 아니다. 개화기에 서양인들이 전한 흰색 드레스 셔츠가 일본을 거쳐 들어오는 과정에서 발음상의 오해로 오랫동안 와이셔츠로 불렸다. 근대화 이후 흰색의 와이셔츠는 오랫동안 정장을 입는 사무직, 일명 화이트 칼라의 필수 아이템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피스 근무자들도 와이셔츠로 대표되는 포멀 차림보다는 편안한 스타일의 근무복을 선호하는 시대가 왔다. 정보화 시대에 맞는 창조적 사고를 강조하는 전문직 종사자를 일컫는 골드 칼라(Gold Collar)나 재택근무 등 유연한 근무 형태를 따르며 노타이 차림을 즐기는 오픈 칼라(Open Collar)와 같은 새로운 직업군을 대변하는 말들이 등장하면서 세분화된 직업 구분만큼이나 셔츠의 의미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화이트와 블루, 셔츠 칼라의 색으로 직업을 구분하던 시대는 가고, 가슴 언저리 눈에 띄는 로고로 나의 개성을 표현하는 셔츠의 시대가 도래했다. 옥스포드 버튼다운 셔츠, 셔팅 스트라이프의 포플린 셔츠, 늘 옷장을 채우는 기본 아이템들에 로고와 시그니처 디테일로 패션센스를 더한다. 자전거와 여우, 이제 하트와 슬쩍슬쩍 드러나는 삼색 테이프까지 셔츠의 칼라보다는 개성적 선택에 초점을 맞춘다.
현대 남성복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셔츠는 항상 이너로 다뤄져 왔다.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입혀졌을 때부터 피부와 가장 가까이 입는 속옷 개념으로 여겨졌던 탓에 과연 셔츠 안에 ‘러닝셔츠’를 입는 것이 맞느냐 아니냐가 멋을 추구하는 남성 소비자들의 단골 토론 주제가 될 만큼 화제성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받쳐입은 속옷의 색이 오롯이 드러나는 부장님의 셔츠 차림을 견딜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셔츠는 원래 속옷 개념이니 겹쳐 입는 것은 명백히 위법입니다”라고 답하곤 했지만 사실 무엇과 겹쳐 입든 무슨 대수일까? 부장님에게도 컬러풀한 러닝셔츠와 와이셔츠를 겹쳐 입을 패션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셔츠는 슈트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단독으로도 얼마든지 연출이 가능하고 어떤 아이템과도 레이어드가 가능한 무궁무진한 활용도를 자랑하고 있다.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아이템을 찾는 요즘 셔츠는 여러가지로 효자 아이템이 되어준다. 지난해 칼럼 연재를 시작한 이래 셔킷(셔츠+재킷)이라는 하이브리드형 아이템을 여러 번 소개했다. 재킷이나 점퍼 등 아우터 대용으로 활용 가능한 오픈형 셔츠의 활용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전반적으로 상의 기장이 짧아지고 있는 지금, 셔츠도 허리선까지 짧게 자른 크롭트 기장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여성복에서는 트렌디한 오버사이즈의 크롭트 셔츠를 하의와 세트로 구성하기도 하고, 밑단에 스트링 디테일을 더해 간절기 블루종의 대체 아이템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아예 긴 기장의 오버사이즈 셔츠와 니트 베스트를 코디하는 스타일링도 낯선 프로포션으로 시선을 끈다. 셔츠를 길게 늘린 편안한 핏의 셔츠 드레스도 여성복에 있어 온·오프타임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실용적인 아이템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오랜만에 반팔 셔츠에도 주목해보자. 아무리 더워도 재킷 안에는 긴팔 셔츠가 정석이라 고집하던 엄격한 패션 룰은 이제 잊어도 좋다. 다가올 여름에는 이른바 알로하 셔츠로 불리는 납작하게 칼라를 접은 오픈 칼라의 컨버터블 셔츠도 인기를 끌 전망이다. 휴양지 무드의 열대식물과 야자수 패턴 대신에 수채화풍의 풍경을 은은하게 그려 넣은 리넨 혼방 셔츠는 리조트 룩은 물론이고 도심에서 입기에도 손색이 없다.
아예 세련된 그레이톤으로 톤다운 된 넉넉한 핏의 컨버터블 셔츠는 IT 업계에 종사하는 자유로운 ‘오픈 칼라’를 위한 맞춤형 아이템처럼 보인다. 아웃포켓 디테일과 종이와 같은 표면감으로 냉감까지 더해주는 합성소재의 컨버터블 셔츠는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세련된 연출이 가능하다. 사계절 멋스러운 스타일링이 가능한 만능 아이템 셔츠에 대한 조속한 재평가와 함께 각자의 옷장 속 셔츠 스타일을 한번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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