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기념관을 찾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루스벨트 대통령을 롤(role)모델로 제시했었다”며 각별한 인연을 강조했다. 미국의 대공황을 맞아 뉴딜(New Deal) 정책을 편 루스벨트와 코로나19 위기에서 한국판 뉴딜을 외친 문 대통령의 공감대를 찾으려는 취지로 보였다.
루스벨트 뉴딜 정책의 핵심은 ‘3R’로 압축되는 세 가지 키워드다. 구호(Relief·실업자 구호), 회복(Recovery·재정지출과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한 경제회복), 개혁(Reform·시장규제와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뉴딜은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 차원을 넘어선 정치전략 측면에서 봐야 할 대목도 있다.
뉴딜은 미국 민주당이 노동자와 이민자 등 소외 계층까지 우군으로 영토를 넓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뉴딜연합 덕분에 민주당은 1932∼1968년 10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7번 승리했고, 이 기간 내내 의회에서 다수파였다. 문재인 정권이 지난해 총선 승리 후 한국판 뉴딜을 선언한 배경에 이 같은 정치적 계산이 깔렸을 것이다. 진보좌파 세력의 20년 집권론이 빈말로 나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대공황이나 제2차 세계대전과 동렬로 비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례 없는 위기 상황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뉴딜을 구현하는 루스벨트 리더십과 문재인 리더십은 너무나 달랐다.
우선 대국민 소통을 꼽을 수 있다. 루스벨트는 공식적인 연설 이외에도 사적인 성격의 라디오 연설을 했다. 12년간 재임하면서 300차례가 넘게 ‘나의 친구들’이란 말로 시작하는 대화를 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 소통의 동력으로 갈라진 민심을 합치고,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완력이나 힘이 아닌 소통이 대통령의 강력한 무기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수시로 국민들과 소통하겠다던 문재인 정권이 과연 그런 약속을 지켰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정작 국민들이 알고 싶어 했던 조국, 윤미향, 박원순 사건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 없이 넘어가고서 ‘소통 대통령’을 자임할 순 없을 것이다.
루스벨트 정권에서 야당인 공화당은 고립주의 노선으로 군사력 강화 정책을 반대해왔다. 이들의 반대로 루스벨트가 의회에 요청한 징병제 실시 동의안이 부결될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참전이 임박하자 오히려 초당적 협력에 나섰다. 재무장을 둘러싼 당파적 논란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야당인 공화당 소속 헨리 스팀슨은 육군장관에, 프랭크 녹스는 해군장관에 각각 임명됐다. 그 결과 루스벨트는 전쟁의 최고사령관 자리를 뛰어넘어 미국민 전체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루스벨트가 추구한 뉴딜 연합은 문재인 정권이 강조해온 ‘촛불동맹’과 달랐다. 끈질긴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으로 루스벨트 민주당은 지지 세력 외연을 확장해 장기 집권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반면 문재인 정권에서 촛불동맹의 상징이라고 봤던 2030세대가 불과 1년 만에 등을 돌리는 사태를 맞고 있다. 그 원인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당의 4·7 재·보궐선거 참패가 그 결과였다.
그나마 재·보선 직후 여권 안팎에서 나오던 쇄신과 변화의 목소리마저도 잦아드는 분위기다. 잠시 주춤하던 여당의 완력 정치도 되살아나는 조짐이다. 시간만 지나면 과거는 다 잊혀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심의 시계에 망각은 없다. 그게 정치의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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