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잊고 싶은, 그러나 기억해야 할 재난의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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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소설/강영숙 외 7명 지음/264쪽·1만6000원·창비교육

사람들은 슬픈 기억을 잊으려 한다. 친구와 싸우고, 대학 입학에 실패하고, 크게 다쳤던 과거를 떠올리기 싫어한다. 공동체가 재난을 대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우리는 팬데믹에 대한 기억을 지워갈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어했고, 어떻게 서로를 미워했으며, 어떤 노력으로 재난을 끝냈는지 망각할 것이다.

이 소설집엔 우리가 겪은 재난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임성순의 ‘몰:mall:沒’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후 건물 잔해에서 발견되지 못한 시신을 다시 더 찾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을 통해 잊혀진 재난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강영숙의 ‘재해지역투어버스’에서 주인공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미국 뉴올리언스를 둘러보는 관광버스에 앉아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 과거를 응시한다. 최은영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손녀를 잃은 친구를 찾는 할머니가 등장하는 ‘미카엘라’를 통해 재난은 얼마 전에도 일어난 일이라고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구제역에 걸린 돼지를 파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는 굴착기 운전기사의 이야기가 담긴 김숨의 ‘구덩이’를 읽다 보면 여전히 재난은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조해진이 쓴 ‘하나의 숨’은 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이 크게 다치는 사고를 통해 매일 일어나는 인재(人災)를 응시한다.

이겨낼 수 없는 재난이 다가올 때 인간은 광기와 혼란에 지배당할까, 혹은 한 그루의 사과나무라도 심을까. 운석이 지구를 향해 날아와 곧 부딪힐 상황을 그린 최진영의 ‘어느 날(feat. 돌멩이)’에서 딸이 먼 곳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읽어보자. 절망의 순간에도 인간다움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희망을 품고 싶어진다.

“내가 엄마 가까운 곳으로 얼마 가지 못하더라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린 이미 충분히 가까이 있다고, 우주는 무한하나 시작과 끝이 있기에 언젠가 지구가 없어진다고 해도 우린 어떤 식으로든 같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우주가 생기고 없어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해도 우린 영영 같이 있을 거라고.”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재난#절망#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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