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여성이여, 욕망하라… 눈치 보지 말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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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캐럴라인 냅 지음·정지인 옮김/400쪽·1만8000원·북하우스

‘인생은 살이 쪘을 때와 안 쪘을 때로 나뉜다.’ ‘죽지 않을 만큼 먹고 죽을 만큼 운동해라.’

다이어트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들이다. 그런데 이 책 저자(1959∼2002)는 음식을 그냥 욕망해 보라고 말한다. 그는 거식증을 앓은 적이 있다. 키 162cm에 몸무게 37kg. 21세의 허벅지는 무릎보다도 가늘었다. 그는 3년 내내 하루에 베이글과 요거트, 사과, 치즈 1개씩만을 먹었다. 그리고 매일 수 km를 달렸다.

저자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나중에야 알았다.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것 같던 20대 초반에 저자는 불안했다. 때는 1980년대였다. 어떤 대학을 갈지, 누구와 잘지, 선택의 순간마다 ‘여성인 내가 정말로 그래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저자는 일이나 진로 같은 거대한 대상 대신 눈앞에 보이는 음식으로 자기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굶기 같은 일련의 의지력 시험은 자신을 남다르고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듯했다.

식욕만이 아니다. 성욕, 소유욕, 권력욕. 여성에게는 욕구를 상상하는 일이 유난히 어렵다. 욕구 자체가 어쩐지 부당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죄책감의 근원을 사회 역학관계에서 찾는다. 세상은 남성의 욕구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집, 직장에서 남성들에겐 대개 조력자가 있다. 조력자는 주로 여자들로, 청소 요리 파일 정리 심부름 등을 해준다. 잡지와 광고판엔 ‘날 언제든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오늘날 여성들의 삶에도 기회가 엄청나게 늘었다고는 한다. 그러나 저자는 앞서 말한 봉사와 제공의 이미지들이 여성 주변에 존재하는지 묻는다. 여성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누군가 성심성의를 다해 줄 거라는 기본적인 신뢰조차 없다.

약 20년 전에 나온 이 책에서 우리는 얼마나 나아갔나. 성차별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해도 집으로 돌아와선 케이크를 먹은 자신을 혐오하고 벌주고 있진 않은가. 머리가 아닌 몸으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하지 마’라는 말이 분신처럼 여성들을 쫓아다닌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여성#욕망#욕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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