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매표소 여성 직원이 비명을 질렀다. 뒤돌아선 채 혼자 일하던 그가 몸을 돌렸을 때 기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것. 그의 반응에 기자도 덩달아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해당 층의 카페는 문을 닫았고 천장 전등도 모두 꺼져 깜깜했다. 매표소만 덩그러니 불이 켜진 상태였다. 사람이라곤 직원과 기자 둘뿐이었다.
지난달 어느 주말, 영화 ‘자산어보’를 보려고 오후 8시가 조금 넘어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영화관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예매를 하지 않아 표를 사려다 의도치 않게 직원을 놀라게 만들었다. 1층부터 층층이 가게에 불이 꺼져 있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영화관이 운영을 하는 게 맞나 의구심이 들긴 했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니 관객은 기자를 포함해 6, 7명 정도였다. 영화는 좋았다.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정약전의 집념, 민초의 애환이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한데 영화를 보려면 담력 테스트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니…. 문화계 종사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피부로 느껴졌다.
지난달 영화 관객은 256만 명으로, 지난해 4월(97만 명)보다 163% 늘었다. 하지만 2019년 4월(1334만 명), 2018년 4월(1407만 명)에 비하면 20%가 채 안 된다. 극장들은 직원을 줄이고 임대 기간이 만료된 상영관은 문을 닫으며 긴축에 들어간 지 오래다.
공연, 전시는 대형 작품을 중심으로 관객이 몰려 그나마 다행이다. 이달 2일 서울 공연을 마친 뮤지컬 ‘위키드’는 모든 회차가 매진됐다. 현재 진행 중인 부산 공연도 매진된 회차가 많다. ‘시카고’도 매진을 이어가고 있다. 16일 막을 내린 ‘맨 오브 라만차’ 역시 조승우가 출연하는 공연은 즉시 매진됐고 홍광호, 류정한이 나오는 회차 역시 매진이거나 대부분이 판매됐다. 띄어 앉기로 매진이라 해도 전체 좌석의 60∼70%만 판매돼 수익률이 높지는 않지만 제작사들은 이 정도만 해도 고마울 뿐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로 함성을 지르면 안 되고 박수만 보낼 수 있지만 공연을 즐기는 열기는 더 뜨겁다. ‘시카고’는 막이 내리고 밴드가 연주를 하면 이전에는 퇴장 음악으로 여겨 관객들이 자리를 떴지만 올해는 대다수가 남아 연주를 듣는다고 한다.
피카소의 회화, 도예, 조각 등 작품 110여 점으로 구성된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에는 하루 3000여 명이 몰리고 있다. 전시기획사는 “코로나19로 인해 관람객이 올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일부 인기작 위주이긴 하지만 코로나19로 억눌린 감정을 문화생활을 통해 푸는 현상은 반갑다. ‘맨 오브 라만차’ 막공(마지막 공연) 때 여주인공 알돈자를 연기한 김지현은 “무대에 선 저희들, 외롭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 말이 찡하게 다가왔다. 답답한 이 시기, 문화를 통해 교감하는 기회가 늘어나길 기대한다. 그래서 조금은 덜 고되길, 조금 덜 외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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