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국가정보원 창설 50주년을 맞아 ‘국정원 50년, 그들을 위한 변명’을 기고했다. 소위 국정원 흑역사라는 오랜 시비 속에서도 묵묵히 임무에 매진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선진국형 정보기관으로 전환하자는 방향을 제시하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창설 60주년을 앞둔 현재의 국정원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을 거치는 10년 동안 국정원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 명분 아래 대폭적인 인적청산과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이는 조직의 정통성과 정보요원의 전문성이 단절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른바 댓글 사건과 불법사찰, 특수활동비 불법 사용 등의 오명을 쓰고 말았다. 증거 수집을 위해 중앙 서버를 공개함으로써 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웃음거리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국회는 작년에 간첩조작 사건을 이유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3년 후 경찰로 이관하는 국가정보체계의 대수술을 단행했다. 10년 동안 미래를 위한 변화의 몸부림이 아니라 조직, 예산, 정보활동 등 전 분야에 걸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다. 1961년 6월 10일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60년을 활동해온 국정원은 현재, 존망의 기로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하는가?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복잡다단하고 새롭게 전개되는 안보환경에서 국가의 신경망은 한시라도 멈춰선 안 된다. 세상이 늘 선의로만 돌아가지 않고, 국제사회의 각자도생 현상이 심해지는 현재의 정세에선 정보의 역할이 더욱 필요하다. 작금의 코로나 백신 확보 레이스에서 보듯이, 국가 위기를 조기에 경보하고, 그 해결의 일익을 담당하는 국가정보기관의 존재는 극명하게 다가온다.
국정원의 앞날에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국정원에 어떤 변화가 와도 애국심은 줄지 않는다고 다짐하는 정보 요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함정 진수식에서는 정박해 있는 함정에 연결된 진수줄을 절단한다. 아기의 탯줄을 끊듯 새로운 함정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다. 창설 60주년을 계기로 진수줄을 절단하듯 과거의 적폐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하여 국가정보력의 핵심으로 당당하게 그 역할을 다해주기를 고대한다.
과거는 징비록으로 가슴에 담아둘 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앞으로 박지원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지휘부가 제대로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나갈 토대를 구축하는 문제이다. 정보활동 업무에만 전념하되, 그 공적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도록 지휘부가 직을 걸고 막아야 한다. 적폐청산으로 위축된 정보요원들의 야성도 되살리는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정치권과 언론 등 사회 각계에서도 정보기관의 명예를 존중해 주고, 따뜻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주기 바란다. 그렇게 되면 창설 60주년 이후 국정원 역사는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강력한 정보 역량을 확보하여 오로지 국가안보만을 위해 혁혁한 성과를 거두는 기관으로 기록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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