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1일(현지 시간) 첫 회담은 동맹 경시로 임기 내내 한미 관계가 삐걱거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 한미 정상은 대만, 남중국해처럼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안보 이슈부터 백신과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 인공지능(AI)과 차세대 이동통신 등 미중이 극한 경쟁을 벌이는 경제, 첨단기술 분야 협력까지 폭넓게 합의했다.
중국 문제에서 바이든 행정부와 이견을 보여 온 문 대통령이 대북정책에서 협조를 얻기 위해 한국에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 역할 확대를 요구해 온 바이든 대통령에게 호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일단 문재인 정부의 ‘중국 경도론’을 어느 정도 해소했지만 중국 시진핑 정부가 압박해 올 경우 문 대통령이 이런 입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 첫머리부터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명시했다. “남중국해 등 지역의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상공 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 유지”를 약속했다.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차 협의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이날 한미 정상은 2017년 문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첫 회담 때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성명과 이와 별도로 신기술 협력 등이 조목조목 포함된 7000자가 넘는 한미 파트너십 자료도 발표했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 분야의 공급망 구축 협력뿐 아니라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생산 역량과 미국의 기술·원료를 결합해 한국을 전 세계 백신 공급의 생산기지 중 하나로 만들겠다는 백신 글로벌 파트너십도 체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 제약사 모더나와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SK바이오사이언스는 노바백스와 백신 개발·생산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견에서 “55만 명의 한국군 장병에게 백신 접종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대북정책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미온적이었던 2018년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과 문재인 정부가 소극적이었던 북한 인권 문제가 함께 한미 공동성명에 명시됐다.
문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대한 것 이상”이라며 “최고의 순방이었고 최고의 회담이었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도 “이번 회담은 놀랍게 강한 양국 관계는 물론 동맹이 엄청나게 성장했음을 보여줬다고 믿는다”고 평가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박효목 기자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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