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식품’ 상징성에 그동안 억제
1년새 팜유 101%-옥수수 124% 뛰어
올릴 계획 없다면서도 ‘눈치보기’… 전문업체 사이선 “더 버티기 어렵다”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공식품 제조업체들이 판매가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업체들은 올 초 두부, 즉석밥, 두유 등 일부 식품 가격을 이미 인상했지만 라면, 과자 등 소비자들이 가격 변화에 민감한 품목의 경우 가격 인상을 유보해 왔다. 곡물 가격이 계속 오를 경우 하반기부터 과자 등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팜유와 옥수수, 밀의 국제 시세는 최근 1년간 최대 100%가 넘는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다. 라면의 핵심 원자재인 팜유 국제 시세는 지난해 5월에 비해 101%, 과자 등에 쓰이는 옥수수는 124% 상승했다. 밀(소맥) 시세도 42% 뛰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물류비용 상승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가공식품의 후방산업 격인 소재식품 업계에선 가격 인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2013년부터 9년째 동결된 밀가루 가격은 올해 인상이 유력하다. 한 제분업체 관계자는 “인상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밀가루 공급 1위인 CJ제일제당은 “당분간 인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CJ제일제당처럼 사업 영역이 다양하지 못한 전문 업체들 사이에선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옥수수를 원료로 생산하는 소재식품인 전분 가격도 오름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분 1위 업체 대상의 1분기(1∼3월) 전분 판가는 5% 상승했지만 옥수수 매입가는 그 두 배인 10% 늘어난 상황이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 하반기 수익성 개선을 위한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대표적 가공식품인 라면은 주요 원재료인 밀과 팜유 가격 상승에 따른 인상 압박이 거세다.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은 1분기 나란히 영업이익 감소세를 나타냈다. 특히 1위 농심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5% 급감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의 수출 호조에 따른 ‘역기저효과’도 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도 이익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기간 농심은 판매관리비를 줄였지만 원가율이 3%포인트 가까이 급등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심과 삼양식품은 각각 2016년과 2017년부터, 오뚜기는 2008년부터 국내 라면 판매 가격을 동결하고 있다. 대표적인 서민 식품이라는 라면의 상징성이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업계에서는 “오랜 기간의 가격 동결도 강력한 인상 요인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낵 1위 업체인 오리온도 비슷한 상황이다. 주재료인 밀과 옥수수 가격이 뛰었고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선 유지류 가격도 30% 급등했다. 오리온은 현재는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 오리온 측 관계자는 “생산 및 재고관리 효율화와 국내외 법인 공동 구매 등을 통해 비용 절감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 추세에 밀가루 가격 동결까지 풀리면 과자 가격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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