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이해해야 범죄 막을 수 있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5일 03시 00분


‘조현병의 모든 것’ 한국판 감수한 권준수 서울대 교수


2016년 서울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2018년 진료하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숨진 사건, 2019년 안인득이 일으킨 경남 진주 방화·살인 사건….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범죄자가 정신질환 중 하나인 조현병을 앓았다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가 일으키는 범죄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7일 국내 첫 출간된 ‘조현병의 모든 것’(심심)을 감수한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62·사진)는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범죄를 저지른 이들 중 일부는 돌봄을 받지 못해 조현병 증세가 심해진 경우”라며 “사회 구성원들이 조현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고 병 자체를 이해해야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조현병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조현병 연구의 대가인 E 풀러 토리 미국 국립군의관의과대 정신의학과 교수(84)가 1983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했다. 조현병 환자 수백 명을 상담한 사례와 최신 의학 정보를 담았다. 개정을 거듭해 2019년 7판이 나온 이 책은 조현병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 교수는 정신분열병이라고 쓰던 의학용어를 2011년 조현병으로 바꾸는 데 앞장섰다. 조현병(調絃病)은 현악기의 줄을 조율하면 좋은 소리가 나듯이 환자가 치료를 잘 받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권 교수가 이 책의 감수를 맡은 것도 조현병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 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서다.

권 교수는 “국내 조현병 환자는 약 50만 명으로 추정된다. 가족까지 고려하면 약 200만 명이 조현병과 직간접으로 관련돼 있는 셈이지만 가까운 사람도 조현병 환자를 단순히 ‘미친 사람’으로 여기거나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흔히 조현병을 희귀 질병이라고 생각하지만 발병률이 전체 인구의 1% 정도로 결코 낮지 않다. 조현병 환자는 약물 등 치료를 받으면 공격성을 제어할 수 있고, 치료를 통해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책에서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내용은 직접 주석을 달고, 한국의 정신건강복지법을 비판하는 등 자신의 의견을 담은 글도 썼다. 그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강제 입원을 까다롭게 한 법 때문에 현장에선 치료가 더디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필요 없는 장기 입원을 줄이겠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며 “빠른 치료가 필요한 환자와 가족을 돕지 못했다”고 했다.

토리 교수는 책에서 조현병에 대한 국가의 역할도 강조한다. 정부가 하루에 일정 시간 입원해 치료를 받은 뒤 당일 퇴원하는 ‘낮병원’을 적극적으로 운영해 조현병 환자를 관리하면서 사회 복귀를 도와야 한다는 것. 권 교수는 “한국은 조현병 환자를 돌보는 책임을 대부분 가족에게 미루고 있다”며 “조현병 환자를 국가가 관리하는 국가책임제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조현병#범죄#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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