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착륙’ 역풍… EU, 벨라루스에 “유럽비행 금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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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전투기 띄워 강제착륙’ 제재… 벨라루스行 운항도 취소 ‘고립된 섬’
독재자 루카셴코 지지 세력도 제재… 美 “국제규약에 대한 모독” 제재 동참
벨라루스 “하마스 폭탄 설치 의혹”… 하마스 “우린 강제착륙과 무관”

24일 유럽연합(EU)이 벨라루스 여객기가 27개 회원국 영공을 비행하거나 공항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하루 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67)이 반정부 언론인 로만 프라타세비치(26)를 체포하기 위해 전투기까지 동원해 아일랜드 민항기를 강제 착륙시키자 즉각 제재에 나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또한 EU의 제재를 전폭 지원할 뜻을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는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임시 정상회의에서 벨라루스 여객기의 영공 진입과 공항 접근을 금지하고, 역내 항공사 또한 벨라루스 영공을 비행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이에 따라 독일 루프트한자, 네덜란드 KLM은 이날부터 벨라루스 영공을 지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EU는 프라타세비치의 즉각 석방을 촉구하고 강제착륙에 관여한 벨라루스 고위 관리와 주요 기업에 대한 입국 제한과 자산 동결 등 추가 제재에도 나서기로 했다. 해당 여객기에 벨라루스 비밀경찰이 탑승하는 등 루카셴코 정권이 조직적으로 프라타세비치 체포를 준비해온 정황이 포착된 탓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강제착륙과 프라타세비치의 체포는 국제 규약에 대한 모욕”이라며 “EU의 제재 결정을 환영하며 미국 또한 상응하는 방침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루카셴코 정권은 지난해 8월 대선 부정 의혹이 불거지자 인접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인 리투아니아, 폴란드와의 육상 국경을 봉쇄했다. 이 와중에 EU와의 항공편까지 막히면서 벨라루스가 철저히 고립된 ‘유럽의 북한’이 될 것이라고 미 외교매체 포린폴리시가 진단했다.

EU 회원국으로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라트비아와 벨라루스의 외교 전쟁도 거세지고 있다. 21일 라트비아 수도 리가의 한 호텔 앞 국기 게양대에 걸렸던 벨라루스 국기가 내려지고 벨라루스 야권을 상징하는 ‘백적백’ 깃발이 등장했다. 당초 이날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열리는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는 리가와 벨라루스 민스크 두 곳에서 동시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대선 부정 논란 직후 벨라루스가 개최권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라트비아 외교부와 리가 시의회가 벨라루스 야권을 지지한다며 이날 국기 게양 철회 결정을 내렸다. 발끈한 벨라루스는 24일 자국 내 라트비아 외교관의 추방을 명령했다. 라트비아 역시 즉각 맞추방을 선언했다.

민스크의 한 구금 시설에 있는 프라타세비치는 24일 현지 경찰이 공개한 영상을 통해 “지난해 소요 사태를 조직하는 데 역할을 했다”며 대선부정 항의 시위에 동참한 사실을 인정했다. 벨라루스에서는 반정부 폭동을 선동했을 때 최소 15년 징역형에서 최대 사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프라타세비치의 부친은 BBC에 “아들이 고문받고 있을까 두렵다”며 루카셴코 정권의 강압에 의해 촬영된 영상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벨라루스 정부는 24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해당 여객기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착륙시켰다”는 해명을 내놨다. 하마스는 “우린 강제착륙과 무관하다”며 부정했지만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번 사태를 성급하게 평가하지 말라”며 벨라루스를 두둔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교장관은 “이번 사건이 러시아의 인지 없이 강행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루카셴코 대통령의 후원자를 자처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조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강제착륙#벨라루스#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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