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루질의 추억[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1〉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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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하굣길, 아이들은 가방과 옷을 벗어두고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고, 해질녘 집으로 향했다. 여름방학 전까지 섬 아이들 일상이었다. 학교와 바다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자맥질하며 놀고 있을 때 양동이와 족대를 든 선생님이 우리를 불렀다. 양어장에 넣을 물고기를 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아이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았다. 학교 정원에는 장학사 방문 때만 바닷물이 채워지는 작은 양어장이 있었다. 이곳에 넣어 둘 물고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잘피(여러해살이 해양식물) 주변으로 족대를 끌고 다니면 꽃게, 갯가재, 해마, 졸복, 베도라치, 노래미 등이 잡히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어둑해질 때까지 양어장을 채울 만큼 잡지 못하자 한 친구가 ‘홰바리’를 제안했다. 아이들은 밤에 다시 모였고, 양어장을 빛나게 할 낙지, 문어, 돌게, 해삼, 성게, 군소를 가득 잡았다. 경남 남해군 창선도에서 분교를 다니던 필자 경험이다.

섬 아이들에게 홰바리는 신나는 놀이였다. 물 빠진 밤바다에서 불을 밝혀 해산물을 채취하는 전통어로 방식을 경상도에서는 홰바리라 한다. 송진을 묻힌 횃불을 사용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역에 따라 ‘해루질’, ‘화래질’, ‘해락질’, ‘홰질’ 등 다양하게 불렀으나 요즘은 ‘해루질’로 통용되는 듯하다. 갯가에 옹기종기 모여서 구워 먹던 게, 소라, 조개, 홍합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해루질로 어촌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레저로 각광받으면서 곳곳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싹쓸이 해루질로 어장 피해가 확산된 제주도는 야간 해루질 금지 조치를 내렸다. 밤에 마을어장에서 수산동식물을 잡지 못하게 하는 ‘비어업인의 포획·채취 제한 및 조건’을 고시했다. 마을어장 구역 내에서 어류·문어류·게류·보말·오징어류·낙지류 이외에 어업권자가 관리하고 조성한 패류·해조류 또는 정착성 수산동물의 포획과 채취를 금지했다. 또 특수 제작된 변형 갈고리와 수경·숨대롱·공기통·오리발 등 잠수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 “일부 해루질 동호회가 레저 수준을 넘어 어업에 준하는 포획을 하고 있다”며 공익을 위해 무분별한 해루질을 막겠다는 것이 제주도 입장이다. 반면 해루질 동호회원들은 레저인들의 행복추구권을 제약하는 조치이며 자연산 수산물에 대해 어촌계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억지라고 말한다.

해루질로 인한 분쟁은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다. 남해와 서해는 해루질로 조개류, 돌게, 낙지, 물고기 등을 포획·채취하고, 동해는 방파제와 갯바위에서 주로 문어를 잡는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개별 어촌 상황에 따라 온도차가 있다. 관광 상품으로 해루질을 활용하는 마을도 상당수 있다. 한쪽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사안이 아니다. 지금은 생업권과 레저 활동권의 적정선을 찾는 과정에 있다. 양쪽이 동의할 만한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더라도 갈등이 일시에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건전한 레저 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동호회원들이 몰려다니며 종패(種貝) 뿌린 어장에 피해를 주거나 온갖 잠수장비를 이용해 남획하고 불법 판매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뭐든 지나치면 탈 나기 십상이다.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해루질#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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