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잔여 백신 접종 열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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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전 부작용 논란이 있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이 귀하신 몸이 됐다. 일반인 AZ 접종 첫날인 27일 당초 우려와는 달리 예약을 해놓고 나타나지 않은 ‘노쇼(no show)’는 2%에 불과했다. 노쇼로 인한 ‘잔여 백신’을 노리던 많은 예약자들은 물량 부족으로 허탕을 쳤다.

▷특히 젊을수록 부작용이 심하다는 뜻에서 AZ 백신을 ‘아재 백신’이라 부르며 떨떠름해하던 30, 40대가 근처 병원의 잔여 백신 수량을 알려주는 네이버와 카카오톡 서비스로 몰리면서 접속 장애도 발생했다. 온라인에는 “아이돌 콘서트 티켓 예매하듯 광클(빛의 속도로 클릭)했는데 놓쳤다”는 실패담이 속속 올라왔다. “해외 출장 가야 하는데 노쇼 백신 알림 받고 아차 하는 사이 놓쳤다” “여름 오기 전에 마스크 벗으려고 수시로 접속했는데 ‘0’만 뜬다”는 것이다. 드물게 “거래처 다닐 일이 많은 자영업자다. 잔여 백신 업데이트 열댓 번 만에 맞고 왔다”는 성공담도 있다.

▷이날 잔여 백신을 맞은 사람은 6만2000명이며 이 중 93.5%가 일찌감치 예비명단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당일 예약으로 접종에 성공한 사람은 4229명뿐이다. AZ는 병당 10∼12명이 맞을 수 있고, 개봉 후 6시간이 지나면 버려야 한다. 하루 예약자가 30명이면 3병을 따는데 남는 6명분에 노쇼 물량까지 병원 인근의 예약자들에게 돌아간다. 잔여 백신 접종은 30세 이상을 대상으로 AZ만 가능하다.

▷‘액체로 된 금’이라 불리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속도 못지않게 폐기량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백신 복권, 공짜 맥주, 소개팅 앱의 성공 확률 14% 상향 조정 등 온갖 인센티브에도 접종률이 정체되자 20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접종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예를 들어 화이자는 한 병에 6명분이 들어 있는데 접종자가 한두 명만 있어도 병을 따라는 것이다. 미국은 폐기량 비율을 현행 0.4%에서 2%까지 허용할 방침이다. 백신 부자 나라이니 가능한 얘기다.

▷백신 가뭄으로 허덕이던 한국이 물량난이 풀리자 성숙한 국민의식에 선진적인 접종 인프라와 정보기술로 버리는 백신 없이 접종 속도를 내고 있다. 27일에는 접종 시작 후 최다 인원인 65만7192명이 1차 접종을 마쳤다. 이대로 가면 상반기 접종률 25% 달성도 가능할 전망이다. 하지만 고령층 예약률이 60%대로 낮아 걱정이다. 잔여 백신에 줄 서는 사람들은 “앞선 접종자들이 괜찮은 것 보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이들의 백신 접종 열기가 고령층의 접종률을 끌어올리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잔여 백신#접종#혈전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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