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탄소중립 정책 논쟁, 나무도 보고 숲도 함께 살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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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나무’ ‘어린나무’ 감성적 표현
탄소중립 문제의 해결에 도움 안돼
탄소흡수 등 제반기능 종합고려를
200만 山主들 동참 기회 제공해야

정주상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 교수
정주상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 교수
최근 국가의 탄소중립 선언과 관련해 산림 기능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산림청은 올 초 산림의 탄소흡수 기능 진작을 위한 조림정책을 제시했고,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과 생태학 관련 학자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반면 가장 큰 이해 당사자인 사유림 관련 단체들이 이런 논쟁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쟁점의 핵심은 과거 국토녹화사업을 통해 조성된 산림을 벌채하고 갱신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산림청은 전국 산림 중 약 72%가 이미 4영급 이상으로 탄소흡수 기능이 급속하게 약화돼 탄소흡수 기능 진작을 위한 벌채 후 조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환경단체는 나이가 들수록 산림의 탄소흡수 기능이 더욱 왕성해지기 때문에 벌채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갈등은 첨예할수록 좋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산림의 이용과 보존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의 조율과 절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논쟁이 지나쳐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논쟁에서 단순히 ‘늙은 나무’ ‘어린 나무’ 같은 감성적 표현은 탄소중립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 탄소흡수원으로서 나무와 숲은 개념 자체가 다른 것으로 구분돼야 하며, 탄소경영을 위한 산림정책을 논할 때는 당연히 숲의 탄소흡수능 자료가 그 토대로 사용돼야 한다.

해외에서 수행된 원시림 대상의 탄소흡수능에 대한 연구결과보다는 국내 산림의 입지여건이나 산림 구조적 특성에 따른 탄소순환체계 자료를 참고해야 더 실질적인 논쟁이 될 것이다. 또한 산림의 탄소흡수기능은 다양한 산림의 생태적·경제적·사회적 기능 중 한 가지임을 이해하고, 산림 제반 기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논쟁이 바람직하다.

현재 환경단체에서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산림의 탄소흡수기능 진작을 위한 벌채 후 조림 면적을 연간 약 2만300ha에서 3만ha로 늘리는 것이 몹시 과다하다는 것이다. 80년 이상 대(代)를 이어 벌채와 조림사업 경험이 있는 필자도 황량해진 벌채 현장을 보면 가슴부터 울렁거린다. 하지만 산림경영학자로서 이와 같은 환경단체나 생태학자들의 부정적 인식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전체 산림면적의 약 640만 ha 중 국립공원, 도립공원 그리고 다양한 보호림 등을 제외하고, 실제 산림경영이 가능한 면적은 대략 500만 ha에 이른다. 이 산림 중 약 60%에 해당하는 300만 ha 정도만을 대상으로 매년 3만 ha씩 점진적 갱신조림을 해간다면 꼬박 100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된다. 이론적으로 100년 후에는 1세부터 150세, 200세 이상 되는 숲들이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포할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벌채와 조림을 통해 숲의 영급(나이)구조가 다양해질수록 종(種) 다양성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당장 눈앞의 흉측한 벌채현장 사진에 낙담하기보다는 거시적 안목에서 백년대계의 비전을 갖고 산림을 경영해 가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산림경영학자인 필자의 입장에선 환경단체의 주장에도 힘이 실리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이런 격한 사회적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산림과 임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우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이 논쟁이 국내 탄소시장 활성화를 제대로 앞당기는 기폭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 전체 산림의 67%를 소유한 200만 산주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환경단체의 탄소중립 방안에 적극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으면 한다.

정주상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 교수
#탄소중립#정책 논쟁#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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