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매일 밥 챙겨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줘도 고양이는 도도하기 그지없다. 가끔 다가와 애교를 떨다가도 안으려고 하면 쓱 도망가 버린다. 인간 따위 신경 쓰지 않겠다는 투다. 주인님을 모시는 집사의 인생은 고달프다.
이 소설은 인류가 고양이를 모시는 미래를 그린다.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죽인 탓에 자신들이 세운 문명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위생 수준이 떨어지면서 세계에 전염병이 창궐한다. 쥐들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쥐들은 인간이 실험용으로 쓴 흰쥐를 우두머리로 세우고 인간들을 공격한다. 이때 세상을 구할 영웅이 등장한다. 고양이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프랑스 파리. 고양이들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파리 시테섬을 근거지로 삼고 쥐들과 맞서 싸운다. 살아남은 몇몇 인간들이 고양이들을 돕는다. 고양이들은 전쟁이 길어지자 자신만의 문명을 구축하기로 한다. 인간의 문명 중 그나마 쓸 만했던 문자를 사용하기로 한다. 문자가 기록을 남기고 정보를 공유하기에 훌륭한 도구라고 판단한 것. 고양이들은 과거 인간이 작성한 고양이 관련 기록을 찾으며 백과사전을 쓴다.
저자는 고양이 ‘도미노’를 키우는 집사다. 저자는 도미노를 “사랑스러운 공주님”이자 “날카로운 발톱과 식탐, 신경질, 무엇보다 병적인 자기애”가 넘치는 고양이라고 평가한다. 이 소설의 ‘주묘공(主猫公)’인 바스테트는 도미노와 쏙 빼닮았다. 바스테트는 흰 털과 검은 털이 섞여 있고 눈동자는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초록색이다. 몇 시간씩 구석구석 털을 고를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식탐과 성욕은 강한 편이다. 다른 고양이에게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전달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바스테트는 소설에서 인간들을 집사 취급하며 무시한다.
저자의 무한한 상상력은 이번 소설에서도 녹슬지 않은 듯하다. 치밀한 자료조사 덕에 설득력도 높다. 소설에 ‘고양이 백과사전’ 챕터가 곳곳에 들어갔는데 고양이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충실히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1665년 페스트가 영국 런던을 휩쓸었는데 이는 런던에서 고양이 박멸이 대규모로 행해진 직후였다. 이 같은 정보를 통해 소설 속에서 전염병을 옮기는 쥐를 막기 위해 고양이와 인간이 힘을 모으는 이유를 독자들에게 납득시킨다.
이번 작품은 저자가 2018년 국내에서 출간한 장편소설 ‘고양이’(열린책들)의 속편이다. 전작이 인간 문명이 쇠퇴하는 과정을 고양이의 시점에서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고양이들이 본격적으로 자신들만의 문명을 세우는 이야기를 다뤘다. 저자가 2001년 한국에 출간한 장편소설 ‘개미’(열린책들)와 마찬가지로 지구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는 주제를 강조한다. 소설은 프랑스에서 2019년에 출간됐지만 전염병이 창궐한다는 설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정말 인간 문명은 고양이 문명만 못할까. 바스테트의 어머니 고양이가 남긴 말이 그나마 인간을 위로한다.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니 성급히 일반화하지는 말아라. 설마 그 많은 수의 인간들이 다 실망스럽기야 하겠니. 틀림없이 괜찮은 인간도 섞여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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