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백신 협력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 협력을 꼽았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산업을 안보 문제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첨단산업 공급망 재편이 장기화될 것이라며 한국도 동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달 21일(현지 시간)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 경제 협력의 핵심 과제로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의 협력 강화를 꼽았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반도체, 배터리 등 제조업 공급망 재편과 첨단 기술 동맹에 대해 “제2의 브레턴우즈 체제”로 비유하며 “한국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30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 16명에게 한미 정상회담 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 서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이번 정상회담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은 앞으로 한국은 한미동맹의 울타리에서 경제 안보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이번 조사 내용은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21일부터 24일까지 미국 상·하원의원 전·현직 보좌관 12명(공화당 8명, 민주당 3명, 무소속 1명),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코리아소사이어티 등 싱크탱크 연구원 4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미국 입장에서 ‘매우 성공적인 회담’(5명), ‘소기의 성과가 있었음’(6명) 등 전반적으로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성과로는 ‘한미 백신 협력’(5명)과 ‘첨단 기술, 글로벌 공급망 등 경제 협력에 대한 의지 확인’(4명)을 꼽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모더나가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맺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 반도체 및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에 총 44조 원가량의 투자를 발표한 것을 주된 성과로 본 것이다. 바이오(Bio), 배터리(Battery), 반도체(Chip) 등 BBC 산업은 바이든 정부가 자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미래 첨단 산업의 핵심 분야다.
아쉬운 점은 ‘대중, 대일 관계에 있어 한미 양국의 외교적 협력 지점 확인’(4명), ‘한국의 쿼드 가입 등 인도태평양 안보 협력 강화’(4명)가 꼽혔다.
앞으로 한미 양국 경제 협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야를 묻는 질문에는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협력’(12명)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경제·산업적 이슈가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미국 외교통상 정책 싱크탱크인 루거센터의 폴 공 선임연구원(전 미 상원의원 보좌관)은 동아일보에 “바이든 정부는 미국 반도체 부족 현상을 국가적 안보 문제로 보고 있다. 또 과학 및 첨단 기술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며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은 ‘제2의 브레턴우즈 체제’”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의 BBC 공급망 재편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를 구축한 브레턴우즈 체제에 비유한 것이다.
그는 “워싱턴 정계에는 ‘만약 당신이 테이블에 앉아 있지 않다면(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메뉴에 오를 것이다’란 말이 있다. 한국은 테이블에 앉을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며 한국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시사했다.
한국이 향후 미국과의 관계에서 둬야 할 우선순위를 묻는 주관식 질문에서도 중국 견제를 위한 경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답변이 주를 이뤘다. 한 응답자는 “핵심 산업 영역의 공급망 협력 및 첨단 기술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미국 주도의 역내 협력 강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일본, 대만처럼 대(對)중국 방위(defense)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한미 양국 간 무역 및 투자를 더욱 촉진시켜야 한다”는 답변도 나왔다.
이 밖에 “한일 간 이견을 해소해야 한다” “일본과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답변도 나왔다. 바이든 정부의 공급망 재편 계획에 한일 양국 모두 주요 파트너로서 역할을 하는 만큼 양국의 긴장 관계를 해소해야 한다는 조언인 셈이다. 실제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일본은 한국 기업을 상대로 반도체 소재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앞으로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주도 동맹에 동참하라는 요구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