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관련한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제6의 대멸종’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구 역사에서는 크고 작은 멸종들이 있었는데 이 중 큰 멸종은 총 5번 있었다고 합니다.
먼저 제1차는 4억4500만 년 전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멸종입니다. 이때 해양 생물 50%가 멸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제2차는 3억7000만 년 전 고생대 데본기, 제3차는 2억5100만 년 전 고생대 페름기, 제4차는 2억500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고 마지막 제5차가 중생대 백악기입니다. 특히 5차는 유카탄 반도에 소행성이 떨어져 조류를 제외한 모든 공룡이 멸종해 버린 것으로 유명하죠. 대멸종은 운석 충돌, 대기 변화 등이 생물권 전반에 영향을 줄 때 발생합니다.
그리고 학자들은 바로 지금,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제6의 대멸종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심지어 그 속도는 과거의 멸종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하네요.
대멸종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 멸종을 막는 방법 중 하나는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8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수마트라 코뿔소’, 코스타리카 파나마에 서식하는 ‘할리퀸 개구리’ 등 인류가 무심하게 내버려 두면 향후 100년 안에 멸종할 육지 척추동물이 500종 이상이라고 합니다. 바다에 사는 동식물, 그리고 육지식물까지 생각하면 멸종의 속도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위협할 수준입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일상은 마음 같지 않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삶이 더 어려워졌는데 어떻게 이런 동물의 생존까지 신경 쓰라는 것인지 의문스러운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구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이뤄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체에게 인간의 이익을 조금씩 더 양보하는 게 꼭 필요합니다.
인간의 권리에는 ‘소극적 권리(negative rights)’와 ‘적극적 권리(positive rights)’가 있습니다. 소극적 권리는 결코 침해당해서는 안 되는 것들로, 생명, 자유, 행복 추구에 대한 권리 등이 있습니다. 적극적 권리에는 식량을 공급받을 권리, 기초 교육을 받을 권리, 건강상의 혜택을 받을 권리 등이 포함됩니다. 세계인권선언에 반영돼 있죠.
사회정의는 이러한 인간의 권리를 지킬 때 인간과 인간 간에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나 사회정의조차 환경오염이 특정한 계층에 집중되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를 위해 등장한 것이 ‘환경정의’라는 개념입니다.
환경정의는 환경이라는 배경 안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환경과 인간 사이에 작용하는 문제들에 대해 고민합니다. 환경의 사적 소유나 이용을 억제하고, 공공성이 극대화되는 방향을 추구하죠. 하지만 당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 그리고 인간 이외의 생태 종까지 고려한 환경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는 더 깊은 토론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이용하고 개발할 때 생태적 가치를 보전하려고 노력하는 소극적 접근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죠.
환경정의가 사회 문제에만 천착할 경우 이는 그 자체로 인간 중심적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새만금 갯벌 매립 또는 천성산 터널 개발 이슈 등이 그 예죠. 생명을 지키자는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결국엔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 의해 인간 위주의 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환경정의에 대한 논의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사회 문제와 결부되지 않은 환경 문제는 아예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 사회의 문제와 무관해 보이는, 야생 자연 환경을 지키고 야생 동식물을 보전하는 일 같은 건 아예 논외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논할 때 인간의 소극적 권리까지 양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 인간의 자유 같은 건 인간으로서도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니까요. 그러나 인간의 삶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아닌, 우리가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사용하는 ‘적극적 권리’는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다른 생명체에게 때로 양보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적극적 권리를 어느 선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요? 그 양보의 수준이 높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높다고 할 것입니다.
댓글 0